[3] 자기주도학습, 정서, 자존감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 : 학습자가 배움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인지, 정서, 행동을 점검하고 관리하며 학습 과정을 주도해 나가는 학습활동.
*글이 길다고 느껴지신다면 처음과 마지막 부분만이라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개인적으로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은 먼저 ‘문제견’이라는 반려견이 나오고, 그 개의 보호자가 고민을 털어놓고, 집안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로 평소 생활을 관찰한 뒤, ‘반려동물행동교정사’(훈련사)가 짜잔- 등장해서 솔루션을 제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금쪽같은 내새끼>의 강아지 버전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개에게 일어나는 변화 과정은 정말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문제의 초점을 ‘훈련을 통해 문제견의 행동 고치기’보다는 ‘이 개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하는 질문에 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찾다 보면 타고난 성격이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제목처럼, 오히려 그 개의 보호자 혹은 과거의 경험이나 주변 환경이 원인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문제 행동을 하는 나쁜 개는 없었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훈련 이전에, 항상 산책이나 노즈워킹 등을 통해 개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선행된다. '훈련을 받을 만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그렇게 정서적인 불안감을 낮추는 것만으로 문제 행동이 개선되기도 했다.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할 때 무조건 ‘전략’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정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자기주도학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 만약 ‘나는 할 수 없다’라는 막막함부터 들고, 혹은 하기 싫고, 다른 고민거리들로 머리가 아프다면, ‘내 공부’를 할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학습조차 일어나기 힘든데 거기에 더하여 ‘자기주도’ 학습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즉,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은 방해 요소를 점검하고 학습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정서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무조건 방법을 알려주고 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먼저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환경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을 때, 하게 된다.
자기주도학습을 하기 위한 마음가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자아존중감)이란, 긍정적인 자아상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아상이 긍정적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자아효능감’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과제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인의 능력을 스스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1]한다.
자존감은 학업 성적에서부터 교우 관계까지 두루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높은 자존감은 무언가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높은 자존감, 즉 나는 참 소중하고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려면 실제로 단점이나 부족함이라곤 없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비록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모두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자존감 높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행동 유형이다.
-EBS미디어, <아이의 사생활 2 : 정서-인성 발달>(2016) 중에서
즉, 나 잘났다고 자신감만 있는 것이 자존감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부족함이 있음을 알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이 자존감의 열쇠다.
그렇다면 이런 '자존감'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아래에 자존감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고 머릿속으로 아는 것보다 직접 한 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1. 나의 강점 찾기 : 내 안의 보물을 찾자.
먼저, 내가 학창 시절에 슬럼프에 빠졌을 때 실제로 시도해봤던 방법이다. A4용지를 가지고 와서, 가로로 두고 삼등분을 한다. 가장 왼쪽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적는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다. 일단 무조건 많이 적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도 장점인가...?’하는 생각으로 검열하지 않고, 아무거나 막 적는다. 잘 먹는다. 건강하다. ~를 잘한다. 친구의 말을 잘 들어준다. 잘 웃는다...
그리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는다. 한 번에 장점이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생각난 것까지만 써 놓고 오며 가며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추가해도 괜찮다. 주변의 친구나 가족에게 물어봐도 좋다. 중요한 것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A4용지에 적으면서 그 내용이 눈에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더욱더 스스로 나의 장점을 생각해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장점을 적고 나면 두 칸이 남는다. 가장 오른쪽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을 적는다. 가운데에는, 이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 혹은 단점이 장점이 되는 순간을 생각해서 적는다. 예를 들어 할 일을 자주 깜박한다면,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을 기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장점과 단점은 상대적이며 상황 의존적이다. 목소리가 큰 것이 도서관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야외에서 누군가를 인솔해야 한다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욕심이 많다’라는 성격은 단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것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함께 한다면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서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덧붙임) 나의 강점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사이트도 하나 소개한다.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 원문을 해석해봐도 좋고, 언어를 '한국어'로 바꾸면 번역을 볼 수 있다.
https://www.viacharacter.org/character-strengths
2. 언어적 환경 바꾸기 : 긍정적인 언어를 가까이, 부정적인 언어는 멀리 하자.
언어와 사고는 상호작용한다. 때로는 사고에서부터 언어가 나오지만, 반대로 내가 사용하는 언어, 내가 자주 듣는 말들이 나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는 긍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 부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 내가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이처럼 나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고, 또 내가 원하는 언어적 환경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어색하고 오글거리더라도 거울을 보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자꾸 해보자. 영원한 나의 편은 바로 나다.
또한 내 주변에서 자꾸 나의 외모나 능력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등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가지고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높이고 싶어 하는 '자존감 도둑'이 있다면 굳이 계속 관계를 유지할 필요 없다. 나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자.
3. 작은 성취 경험 쌓기(★)
자존감은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세나개에서 개를 훈련할 때는, 항상 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 리드줄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한다면 우선 그것을 만지기만 해도 폭풍 칭찬과 함께 보상하는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엔 반복과 시간이 필요하다.
완전히 같진 않지만 어쨌든, 성공 경험이 쌓이려면 과제는 쉬운 것에서 점차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만 쉬워도 너무 쉬우면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기 힘들다.
또 계획을 세울 때는 큰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작은 목표 여러 개를 잡는 것이 좋다.
이때 목표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방학 동안 독서 많이 하기’라는 목표는 좋지 않다. ‘많이’는 모호한 표현이다. 누군가에게 ‘많이’는 2권일 수도 있고, 10권일 수도 있다. 따라서 ‘방학 동안 책 5권 읽기’처럼 구체적인 수치가 드러나도록 정하는 것이 더 좋은 목표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목표를 적어 보는 것이다. 방학 동안 책을 5권 읽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 가기’, ‘하루에 50쪽 이상 읽기’, ‘자기 전에 10분 독서하기’ 등등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에 가기 위한 계단과 같은 역할을 해 줄, 작은 목표들을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목표를 달성할 확률도 더 높아지지만, 만약 최종적으로 ‘책 5권 읽기’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실패의 경험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목표 몇 가지를 성취한 경험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세우기 외에도, 평소에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조금 해보다가 안 된다고 바로 포기하지 말고, 일단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한 성취 경험이 모여 자신감이 되고, 자아 개념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뭐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시도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어차피 안 될 거야', '열심히 했다가 안 되면 실망감도 더 크니까 아예 열심히 하지 않을 거야', '거 봐, 안 됐잖아.' 이런 생각들은 내게 오는 성공 경험들을 스스로 멀리 차 버리는 생각이다.
4.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만약 실수나 잘못을 하더라도, 인간은 원래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완벽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하고, 크게 나 자신을 비난하기보다는 '좋은 의도'를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같은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된다. 낙관성은 훈련될 수 있으며, 이 낙관성이 학습을 지속시킨다.
+박진영의 <나는 나를 돌봅니다>(2019)라는 책에는 자기돌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읽어보길 추천한다.
위에는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학생들이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지만, 사실 아동기나 청소년기의 자존감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즉, 무엇보다도 부모나 교사 등 주변인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부모의 자존감이 높으면 자녀 역시 자존감이 높아진다. 공감받아본 아이가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사랑을 받아본 아이가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아이의 말은 항상 주의 깊게 들어주고, 아이의 능력을 믿어 주고, 자꾸 장점을 찾아주고, 실패를 실패로 남아있게 두지 말고 다음의 성공으로 이끌어주며, 스스로 도전하게 하여 성공 경험을 자꾸 쌓아주고, 작은 것이라도 성공한 것에 초점을 맞춰서 성취한 부분을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칭찬을 할 때에는 결과보다는 노력과 과정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잘했어.', '예쁘네.'처럼 추상적인 칭찬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을 칭찬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친 좋은 영향과 고마움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참 행복해지네. 고맙다.", "일주일 내내 빨래 거리를 빨래통 안에 잘 넣어두니, 집안일이 참 수월해졌다. 고마워."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전보다는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새로운 걸 배우면 재미를 느끼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고 믿는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기 바라고, 무언가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자신을 믿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이 시작된다.
세상에 나쁜 학습자는 없다.
[1] 임규혁&임웅(2011), 교육심리학, 학지사,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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