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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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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Feb 17. 2023

프롤로그 Prologue


그냥, 사람은 누구나 어떤 언덕에 기대어 시절의 강을 건너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숨을 수 있고, 나를 감출 수 있는 그런 언덕. 가만히 있기만 해도 편안하고, 나무 한 그루 꽃 하나가 괜히 위로가 되며,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기댈 수밖에 없는 언덕 말이다. 내 20대의 언덕은, 지리산이었다(234쪽).

문득 궁금하다. 당신은 어떤 언덕에 기대어 한 시절을 건넜는가?(237쪽)

박상규 (2012).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들녘.


호제야, 안녕? 요즘 어떠니? 이 페이지를 펼쳐볼 때, 호제가 얼마나 컸을지, 어떤 마음에서 열어봤을지 궁금해지네. 위에는 빡빡이 스님 삼촌이 쓴 책 중에 한 구절이야. 삼촌 만나면 절해도 되냐며, 7세 호제가 붙여준 별명이야. 호제가 어릴 적 짜증 날 때면 ‘엄마 때문이잖아’라고 얘기하곤 했었거든.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책을 떠올렸어. 스님 삼촌과의 대화도 함께 기억했단다. 그 장면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래?


2012년,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책 몇 권을 들고 후마니타스 출판사 카페로 향했어. 저자인 상규선배를 만나로 갔지. 내가 소장할 책에 사인도 받고, 주변에 선물할 분들 책에 사인도 받았어. 책을 읽으며, 나에게는 낯설었던 부분을 상규선배에게 얘기했어.


“선배는 힘들 때, 산에 기대어 살았댔잖아요. 저는 어디에 기대고 살았나 생각해 봤어요. 번뜩 떠오르지는 않더라고요. 난 어디에 기대며 살았나, 지금 어디에 기대고 있나 생각해보고 있어요.”


“기댈 일이 별로 없었나 보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라는 책, 그리고 그 책을 쓴 선배와의 대화 이후로 ‘기댈 곳’을 생각해 보곤 해. 마침 학교 상담소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다면적 인성검사 MMPI 결과를 들은 이후였어. 상담사는 내게 슬픔을 애도하는 시간이 짧다고 말하더라. 내가 너무 밝은 생각만 하고, 미래지향적이라며 이러면 나중에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지. 그러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슬픔을 대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조언을 했어.


나는 힘들 때, 어디에 기대면 평안해질까? 내가 힘들 때, 어디에 기댔을까? 주변 사람들은 힘들 때, 어디에 기대어 힘듦을 풀어나갈까? 묻고 관찰하기 시작했어.


나는 닭을 먹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악에 기대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고, 악기 연주를 하며 풀기도 했어. 그냥 엉엉 울기도 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졌던 듯해. 하지만 뭔가 상규선배처럼 진득하니 기대는 나만의 ‘안식처’는 아니었어. 단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호제는 어떠니?

마음이 힘겨울 때, 어떻게 해결하고 있니?


3-4살 꼬꼬마 호제는 속상할 때, 기댈 곳을 찾아 마음을 달랬어. 호제 스스로는 안 보인다고 생각하며 숨지만, 뒤태가 고스란히 보이는 에어컨 옆 구석으로 몸을 숨겼단다. 조금 더 큰 6-7세 때는 속상해지면 본인이 자는 침대로 쪼르르, 때로는 쾅쾅 발자국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달려가기도 했지. 이 글을 읽는 호제의 ‘기댈 곳’은 어디일까?


기댈 곳을 선택하는 건 호제야. 엄마의 바람을 전하면, 호제의 기댈 곳이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오롯이 ‘나 홀로’ 기댈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에 돌면서,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쳤어. 앞으로도 언제 어떻게 사람과 또다시 강제로 거리두기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거든. 사람에게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하기도 하지. 힘들 때는 이마저도 힘겹게 느껴질 수가 있거든. 혼자서 회복해 낼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 도피처, 기댈 곳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호제도 호제의 힘듦을 직면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호제가 홀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여럿이면 조금 더 수월하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호제의 힘듦을 대신 감당해 줄 수는 없지만, 은근슬쩍 기댈 곳을 하나즈음 스윽 옆에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물론 오만한 생각인가 싶기도 했지. 그래도 꽤 오래된 생각인지라 생각 숙성은 그만하고 일단 해보자! 싶어.




뭐냐면 말이야.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호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호제의 귀한 모습을 기록해줄까 싶어.


살다 보면 내가 한없이 초라해질 때도 있고, 인간관계가 힘들 때도, 지금  상태가 그대로만 지속될  같아서, 때로는 끝을 모르는 바닥으로 내리치는  같기도,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시간을 뭉개고 있는 답답함을 느낄 때도, 나의 마음과 세상의 마음 너무나도 다를 때도 왕왕 있을 거거든. 엄마아빠한테 말하기 싫고, 말할 힘도 없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짓눌릴 때도 있을  있어.


그럴 때, 살포시 이 글을 열어 호제의 귀한 순간들을 하나씩 담으며 잠시 기대어 쉬어갔으면 좋겠어. 먼 나중에 내가 사람이라는 형태로 이 세상에 있지 않더라도 글로서 호제에게 곁을 내주고 싶다는 엄마의 작은 바람이란다.


읽다 보면 호제 스스로 본인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거야. 분명히!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본인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호제야,

마음 편히 쉬었다가 일상을 다시 살아가보자!


2023년 2월

영원한 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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