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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pr 25. 2024

글쓰기와 마라톤의 닮은 점 7가지

글쓰기도 달리기처럼



2024년 4월, 난생처음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뛰고 나니 마라톤은 글쓰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80세가 넘어서도 마라톤을 뛰는지 알 것도 같았다.






1.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고 달리기가 시작됐다. 이번 하프마라톤(Whidbey Island Marathon) 참가자는 580명. 응원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신나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 글쓰기도 환호성을 들으며 신나게 시작됐다. 글쓰기로 처음 환호성을 들은 건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주고받던 이메일이었다.


네가 보내준 메일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네가 무척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달란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책과 신문을 읽으면서 글 쓰는 실력을 향상해 가길 바란다.






2. 하기 싫어진다


시작할 때 들리던 사람들의 응원과 흥분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21.09km 하프마라톤에서 사람들이 나를 쫓아오며 응원해주진 않으니까. 1등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나를 힘나게 하던 응원 소리는 이미 멀어졌고, 가쁜 숨만 나를 바쁘게 쫓아온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 죽을 것만 같다.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저 멀리 떠나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다. 아버지의 칭찬은 나를 춤추게 만들진 않았지만, 작가라는 꿈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글쓰기 실력은 그 벅찬 꿈을 따라가지 못했다. 여러 길을 돌고 돌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항상 글을 깨작대긴 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0년부터는 매년 미주 한국일보 문예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2년을 떨어지고 3년째 되는 해, 그 공모전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이거 하늘의 메시지야, 뭐야.






3. 탄력이 붙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왜 돈까지 내고 이 힘든 행위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더니, 8km 지점부터 달리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숨도 안정되고 달리는 게 점점 괜찮아졌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하프가 아니라 풀마라톤이라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정된 속도로 달리면서 급수대에서 물도 받아 마실 수 있게 됐다.




공모전도 계속 탈락하고 나는 돈도 안 되는 글쓰기를 왜 시작한 거지?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던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글쓰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왜 자꾸 글감이 떠오르지? 그런 나를 응원하듯 브런치 합격 이메일도 받았다.






4. 어쨌거나 21.09km를 달려야 한다


페이스가 아무리 좋아도, 처음 뛰는 하프마라톤은 길다. 이미 10km나 뛰었는데 아직 반도 안 왔다니. 지금 컨디션이 아무리 좋아도 완주하려면 어쨌거나 21.09km를 달려야 한다. 20km 구간까지 아무리 멋지게 달려도 아무 소용없다. 결승선까지 달려야 완주다.




글쓰기가 아무리 신나고 할 만해도, 글쓰기를 완주하려면, 작가가 되려면 어쨌거나 분량을 채워야 한다. 그게 공모전에 접수할 한 편의 에세이든, 브런치북으로 엮어낼 최소 10편의 글이든,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할 200페이지 글이든, 그 분량을 채워야 한다.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결승선을 넘을 수 없다.






5. 어쨌거나 달리기가 끝나면 기록이 생긴다


1시간 54분 50초. 어쨌든 결승선을 지나니 첫 하프마라톤 기록이 생겼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지나쳤고, 겨우 111등이지만, 이제 더 나아질 수 있는 기준이 생겼다.




글쓰기도 어쨌거나 일정량을 써내면 기록이 생긴다. 에세이 공모전에 주야장천 떨어진 3년이라는 기록, 브런치 작가신청을 두 번만에 합격했다는 기록. 올해는 에세이 공모전 (시애틀문학신인문학상) 우수상이라는 기록도 생겼다.






6. 기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고,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았다. 그런데 결승점에 도달해 보니 나처럼 힘들게 달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내가 결승점에 서서 완주를 응원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끝나고 나니 기록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급 러너들이 내 기록을 보잘것없게 만들긴 하지만, 나는 그냥 내 페이스대로 달리면 된다. 달리기 자체가 재미있고 의미 있다. 이번 대회에서 한 흑인 부부가 아빠는 어깨에 아들을 목마태우고, 엄마는 딸이 누워있는 유모차를 밀며 결승선을 넘었다. 내 기록이 이들보다 아무리 좋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 각자 의미 있는 레이스를 했을 뿐이고, 내 레이스를 더 멋지게 만드는 건 내 몫이다.




글쓰기도 달리기처럼 혼자 한다. 때론 외롭고 고독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나처럼 분투하며 글쓰기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글 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하프마라톤을 뛰고 온 다음 날 브런치스토리 구독자가 1,000명을 넘었다.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쓰는 글인데 구독까지 해주시는 분들이 있음에 매우 감사하다. 하지만 구독자도 숫자이니 이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기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 구독자가 1,000명이라고 내 글이 구독자가 하나도 없는 사람의 글보다 나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내 글은 구독자가 만 명인 사람보다 못한가? 이것도 절대 그렇지 않다. 누가 감히 내 아내를 떠올리며 쓴 글을 조회수나, 라이킷이나, 구독자수 따위로 평가할 수 있겠나. (물론 내 아내는 가끔 내 글을 처참히 평가한다) 우린 모두 그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쓸 뿐이고, 내 글을 더 멋지게 만드는 건 내 몫이다.






7.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


하프마라톤을 뛰고 나니 신기했다. 어, 이게 되네? 완주하니 메달과 티셔츠도 받았고, 왠지 몸도 건강해질 것만 같다. 다음에는 풀마라톤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훈련계획을 세운다. 다음 대회를 준비하며 삶이 더 알차질 것만 같다.




글 하나를 발행하고 다음 글을 준비한다. 어떤 날은 잘 쓰고, 어떤 날은 죽 쑤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다. 나에겐 또 쓸 수 있는 글이 있으니까. 다음 글을 준비하며 삶이 더 가득 채워져 간다.






다음 대회, 12월 1일


풀마라톤을 언제 뛸까 알아보니 2024년 시애틀 마라톤이 12월 1일에 열린다고 한다. 그 정도 시간이면 첫 풀마라톤 완주를 준비하기에 충분할 듯하다. (만약 저와 같이 뛰실 분이 계시다면 제가 대회 끝나고 시애틀 스타벅스 한 잔 대접할 텐데 말이죠)




내 다음 글쓰기 대회는 또 언제일까? 에세이 공모전? 2024년 브런치북 프로젝트? 아니면 내일 발행할 한 편의 글? 어쨌거나 계속 글을 쓴다면 또 다음의 기록이 생길 거다. 다음 기록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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