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당근 밭의 남편

물욕 없는 남편의 당근여행기

by 소소황

20대의 남편은 '미친소비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첫 해, 세전 연봉을 훌쩍 넘게 신용카드를 긁었고, 연말정산을 가르쳐준다는 선배 앞에서 낯낯이 까발려지는 바람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남편은 그 후 3년간 소비습관을 고치느라 고생했고, 그 과정을 통해 한번의 소비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소비욕이 사라진 이후 남편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늘 관심사는 다양하지만 사고 싶은 것은 없다는 남편이었다. 그래서일까 갖고 싶은게 있다고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제발 좀 사라고 재촉하는 아내였다. 작은 것 하나 소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남편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랬던 남편이 당근(중고거래) 앱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우리집 작은인간이 옹알이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짐을 늘리지 말자는데 동의한 남편과 아내는 나름의 미니멀리스트였다. 당장에 필요한 것은 모두 선물 받거나 물려받았고, 받지 못한 필수품은 이미 구매한 뒤였기에 딱히 더 필요한 아이템은 없었다. 하지만 지쳐가는 아내를 도울만한 육아용품이 있는지, 혹은 멀뚱히 쳐다보며 하품하는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지 늘 고민했다. 물론, 거기까지만. 선뜻 구매하지 못하는 남편이었고, 살까 말까 수시로 아내의 의견을 물었고, 역시나 사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지금 당장 꼭 필요한 물품이 없었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틈틈이 중고거래 앱 속을 헤매었고, 그로 인해 제품에 대한 정보력만 높아져갔다. 육아용품 시장의 용어와 주요 기능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고, 어떤 브랜드가 유명한 브랜드인지, 어떤 제품이 어느 정도 가격대인지,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추천하는지 학습이 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우리집안 출산/육아용품의 구매담당자는 남편이 되어버렸다. 구매하려는 아기용품을 깐깐하게 검토할 수 있는 기반이 저절로 다져져 버린 남편이었다.



아내는 아파트 단지의 이웃이 카시트에서 아기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카시트로 인해 좁아진 뒷좌석에서 아기를 앉히고 꺼내느라 허리가 아팠었고, 불편한 자세에서 혹여나 아기의 머리가 천장에 받힐까 걱정했던 아내였다. 이웃의 카시트는 회전형 카시트로 허리를 굽혀 깊이 팔을 뻗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아기를 앉히고 내릴 수 있었다. 아내는 반짝이는 눈으로 처음보는 육아용품에 대한 사실을 상기된 목소리로 남편에게 알렸고, 남편은 '이건 꼭 사야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이미 있는 카시트를 또 구매한다는 사실에 남편은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끼지 말고 구매하겠다는 남편이었고, 회전형 카시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따라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구매를 결정한 남편이었다. 다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애매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남편은 남편의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아빠 차에 카시트 하나 달까? 그러면 아빠가 은호를 아빠 집에 쉽게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내가 데려가야만 은호를 볼 수 있잖아."

(* 은호는 우리집 작은인간의 이름이다.)


전략은 유효했다. 아기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원할 때 아기를 데려와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유와 다름없었고, 남편은 카시트의 구매를 합리화하고, 덤으로 효도까지 하는 1석 2조의 결과를 득할 수 있었다. 기존의 부피가 큰 카시트는 조금 더 넓은 뒷자리를 가진 할아버지의 차로 옮기기로 했고, 남편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당근밭을 누볐다.


브랜드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고, 각 제품별 적당한 가격대를 사전에 인지한 남편에게 당근밭에서의 보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새것 같은, 그것도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브랜드의 회전형 카시트를 구매했다. 아이를 편히 태울 수 있어 남편은 만족했고, 편히 내릴 수 있어 아내 또한 만족했다. 무엇보다 새 카시트를 반겨주는 아이의 표정은 이처럼 잘한 소비가 있을까 하는 자화자찬을 하게 했다. 기존의 구형 카시트는 그 나름의 자리를 부여받아 할아버지에게 기쁨을 제공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은 종종 당근 밭을 헤매었다. 중고거래앱의 육아용품 카테고리는 일종의 정보의 바다였고, 개미지옥이었다. 딱히 살 것이 없더라도 어느새 중고마켓 아이쇼핑이 습관으로 자리잡아버린 남편이었다. 밤마실을 나갈 때면 항상 당근밭을 기웃거렸고, 나름의 미니멀리스트인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물품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수백 번의 아이쇼핑을 통해 중고로 구매해도 괜찮을 아이템, 끝도 없이 확장된 육아용품 시장에서 꼭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안목을 길렀다. 이후 구매한 몇 가지도 참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게 남편은 출산의 과정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해갔다. 그렇게 출산 과정에서의 졸업을, 육아 세계로의 입국을 준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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