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결혼기념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삼겹살데이, 빼빼로데이, 로즈데이 등 우리 주변에는 기념일이라 불리는 날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기념일이 아닌 날이 더 적겠다 싶을 정도로 많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부부사이에, 가족사이에, 혹은 연인사이에 챙겨야 할 기념일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가끔 피곤하게 다가오곤합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해보기로 했습니다.생각해보면 기념일은 기쁜 날이 되어야 하고, 기쁜 날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딜 가나 꽃집을 쉬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기쁜 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2021년 3월 10일, 결혼기념일
3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퇴근길에 꽃집에 들려 꽃다발을 사고, 외근 길에 휴대폰으로 짬짬이 적어 내려 간 편지를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예쁜 편지지와 봉투에 마음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살짝 아쉬운 부분입니다.하지만 이를 건네받은 아내의 표정에서 행복을 발견했을 때, 함께 사는 저 또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더 기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기념일을 잘 챙기는 남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기념일이 도래하면 그간 못해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피어나고, 기쁜 하루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날 뿐입니다. 그래서 당일에서야 부랴부랴 챙겨본 이벤트였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기념일은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지 싶습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기쁜 날로 기억될 수 있도록, 무심하게 넘어갈 수 있는 하루를 기억에 남는 하루로 만들 수 있도록 건네주는 조언 같습니다.관계를 소중히 하는 모든 이에게 좋은 남편이, 좋은 부모가, 사랑스러운 연인이 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멘토의 역할을 기념일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심한 저녁, 자축의 현장
아내는 이벤트에 능하다며 결혼기념일 저녁에 남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택근무 중인 아내가 잠시 나왔을 때 포장해온 초밥으로 저녁을 대접하며 꽃다발을 건넸고, 잠자리에 들기 전 발견할 수 있도록 베개 위에 편지를 숨겨놓는 기지를 발휘했거든요. 한방에 빵 터트리는 것도 좋지만, 잔잔하게 여운을 남기는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기념일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서 특정 선물이 중요한 요소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 날이 서로에게 기쁜 날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삼겹살데이, 빼빼로데이 등 특정 상품이 언급되는 기념일은 마케팅의 산물이니 예외로 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마케팅의 산물이라도 판을 깔아주는 역할은 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그 날을 기쁜 날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늘상 할 수는 없는 행위를 편히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니, 기념일 하루는 표현을 통해 바쁜 일상 속 기쁜 날을 하루 추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