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남편의 육아 대비
전투육아, 언제부터 시작일까?
건강한 아내와 아기 덕에 제왕절개, 입원,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의 단계를 무사히 넘기고, 눈만 꿈뻑이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평화로운 출산 이후의 생활을 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육아랄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진짜 육아일까? 남들이 힘들다는, 육퇴(육아퇴근)를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는, 감기는 눈을 차마 감지 못한 채 버틴다는 전투육아는 언제부터인 걸까? 출산의 감동이 여전히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남편에겐 힘듦이 없었고 전혀, 출산이란 행복의 결정체일 뿐이었다.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그 육아의 시점이 대체 언제부터일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까꿍 한 번에 꺌꺌거리는 아기의 똥냄새는 향긋했다. 이 작은 생명체가 대변을 누는 것 자체가 신기한데, 냄새 또한 남편이 아는 그것(?)의 냄새가 아니었다. '내 자식은 똥냄새도 사랑스럽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실감하는 남편이었다. 향긋했던 냄새는 이유식을 먹으면서, 이유식 단계를 올리면서, 쌀밥에 도달하면서, 서서히 남편이 알던 익숙한 '그 냄새'로 변해갔다. 눈 감고도 똥기저귀임을 알 수 있게되자 남편은 문득 '이쯤 되면 육아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봤지만, 남들이 말하는 육퇴를 고대하기엔 턱없이 편안한 생활이었다. 아직은 육아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 양육자가 아내이다 보니 아기는 엄마를 먼저 말했다. 남편은 퇴근 후 귀가하자마자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안고 열심히 아빠를 가르쳤지만, 티칭(teaching)에는 소질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기는 많이 들은 말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먼저 했다. 엄마를 말한 지 한참이 지나도 아빠를 부르지 않았고, 덕분에 남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는 아내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 학창시절 가정주부를 꿈꾸었던 남편은 '꿈을 이뤘다면 아빠를 먼저 말했을 텐데..' 하는 되지도 않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품하는 아기를 안고 좌우로 흔들어 재우곤 했다.
아기는 로봇청소기 앞에서 처음으로 아빠를 불렀다. 그것도 처음 불러본 것 치고는 꽤나 명확하게, 또박또박, 우렁차게 외쳤다. 다가오는 로봇청소기가 무서워 외친 외마디 비명소리가 남편이 들을 수 있었던 첫 '아빠'였다. 그렇게 아기는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했고, 남편은 아기가 겁이 날 때 아빠를 찾는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다. 처음으로 아기에게 불려진 남편은 이제부터 육아라고 마음을 단디 먹었지만, 이후로 다시 아빠라 불려지기 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남들이 말하는 육아는 아닌 듯했다.
겁이 많은 아이인지라 뒤집어져 숨이 막힐 일은 없었고, 나름 키우기 쉬운 아기라는 것이 남편은 늘 감사했다. 필사적으로 배밀이를 하지만 배밀이는 어디까지나 배밀이일 뿐이었다. 이 또한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남편은 집안 곳곳에 안전스펀지를 붙였다. 하지만 아기는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스펀지에 호기심을 보이며 뜯어내곤 했다. 조심성이 많아 음식이 아니면 입에 넣지도 않는 아기였다. 남편은 주의 깊게 아기를 살펴보다가도 해이해지기 일쑤였고, 그런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여전히 전투육아라 부르기엔 부족했다.
남편은 도대체 언제부터 육아인건지, 언제부터 힘들어질지 궁금했다. 매일 밤 끓는 물에 아기용품을 소독하는 것도, 잠 못 드는 아이를 안고 '쉬이-' 소리를 내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행복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하라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하루의 마무리로 딱 적당한 행위일 뿐이었다.
남편은 힘들다는 육아, 힘들어지는 그 시점이 궁금했고, 기다려졌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겠다고 위로차 안부를 건넬 때에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싶었다. 한창 육아에 허덕이는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탄하고 싶었다. 육아가 힘들다는 그 투정거림이 사회적 공감대에 가깝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편은 그 공감대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었다.
아기는 서서히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장난감을 던지기 시작했으며, 걷기 위해 바들거리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편의 부모님, 아기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1주일만 지나도 애가 많이 컸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말끔한 잇몸에 하얀 이가 모습을 드러내며 떡뻥을 씹어보려고도 했고, 새로나는 이가 간지러운지 칫솔질을 하면 키득거렸다. 갑자기 크는 키 때문에 성장통이 와서 자다 깨 울기도 했고, 편식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샤워를 시키기 위해서는 갖가지의 역할극이 필요했고, 심심하면 아빠를 찾아주니 기쁘면서도 종종 지치곤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전투육아의 한복판에 서있는 남편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여 원활한 육아를 영위하는 멋진 남편과 아빠를 꿈꾸었지만, 그런 육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남편이었다. 육아의 끝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퇴근이 퇴사가 아니듯 육퇴 또한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시작이었다. 뫼비우스의 띠 마냥 끝없이 돌고 도는 육아는 눈에 띄지 않게 남편의 생활 속에 침투했고, 출산의 기억을 더듬을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육아전선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편이었다. 출산의 감격은 평생 남겠지만, 어느덧 뒤를 돌아봐야 보이곤 했다. 그렇게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육아를 시작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