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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연재 Apr 13. 2023

이집트 카이로, 너무 이상한데 끌리는 삼각형 세계

이집트 한 달 살기 (1)

이집트에 가면, 그들이 너를 직접적으로 터치하거나 해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지나갈 때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을 거야.


이집트, 정말 독특하다. 독특한 넘어서 이상하다. 이때까지 가본 나라가 서른 가까이 되는 시점에도, 가장 특이한 국가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집트다. 이상함, 특이함, 매력적임. 이 세 꼭짓점이 기가 막히게 균형을 이루는 삼각형 세계가 바로 이집트였다.





이집트에서는 원래 딱 일주일, 카이로에만 있으려고 했다.


온갖 소음과 사기꾼들에 지쳐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싶은 마음 반, 피라미드 문명과 바하리야 사막, 압딘궁전과 카이로 성채 등 너무나 멋진 문명과 자연 때문에 떠나기 아쉬운 마음 반인 상태로 이집트를 떠나려던 순간, 나는 공항에서 출국 거부를 당했고, 그대로 이집트에 3주간 묶이게 되었다.


일주일에서 갑자기 3주가 된 이집트 일정은 4주가 되었고, 결국 한 달을 넘겨 5주를 꽉 채운 뒤 겨우 떠나게 되었다. 일주일에서 3주가 된 것은 타의이자 사고였지만, 3주에서 5주가 된 것은 순전히 내 의지였다. 그냥 의지도 아니고, 너무너무 간절히 이집트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과 의지.








이집트는 분명 매력이 넘치는 나라였다. 피라미드 문명과 바하리야 사막, 압딘궁전과 카이로 성채 등 너무나 멋진 문명과 자연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


나는 그리스에서 이집트로 넘어오는 비행기를 탔는데, 같은 비행기를 탄 그리스인 남자애 둘이랑 친해져서 카이로 시내까지 택시 합승을 하게 되었다. 이집트인과의 싸움은 택시에서부터 시작이었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톨게이트에서, 딱 봐도 말이 안 되는 금액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아마 자신이 내야 할 주차비를 우리에게 요구한 것 같다. 같이 탄 아이들이 버럭 화를 냈더니, 그제야 아무 말 없이 본인이 요금을 지불했다. 도착하자마자 당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가 가득한 하늘과 알아즈하르 공원에서 바라본 카이로 전망




호텔이 가까웠던 우리는 짐을 풀고 광장에서 만나 이집트 전통 음식인 코샤리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나름 유명한 집인데, 우리가 외국인인 걸 알고 서버가 가격을 사기 치려 했다. 다행히 옆 테이블의 현지인 도움으로 맞는 가격을 내긴 했지만, 이집트 도착하고 첫 끼부터 바가지를 쓸 뻔하다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당할 뻔했다...."

이집트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서 내가 두 번이나 뱉은 말이었다.


그리스인 아이들은 코샤리 맛도 없는데 사기까지 당할 뻔했다며 계속 빙글빙글 웃으며 욕을 했다. 화나는 상황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능글맞음에 나 역시도 따라 웃음 짓게 되었다. 이 상황이 어이없긴 했지만, 매콤한 코샤리는 그냥저냥 먹을만했다. 너무 오랫동안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그런지, 매콤한 맛이 반가웠다. 엿같은 상황을 혼자 겪고 있는 게 아니라 든든했다.



코샤리. 특이한 맛이긴 하지만 계속계속 찾게 되는 맛은 아닙니다.



점심을 먹고 그리스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카이로 구경을 나섰다. 나의 첫 행선지는 칸엘 칼릴리 시장이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해 카이로 시내 구경도 할 겸 20-30분 정도 걸어서 갔는데, 가는 길에 온몸의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었다... '들숨에 니하오 날숨에 곤니치와'라는 말이 딱 맞았다.


순간, 그리스에서 만난 스피로스 아저씨가 해주신 말이 생각났다.


'이집트에 가면, 그들이 너를 직접적으로 터치하거나 해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지나갈 때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을 거야.'


히잡을 쓰지 않은 여자
남자 없이 혼자 다니는 여자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은 여자
동양인 여자


이 넷 중 하나에만 해당되어도 카이로에서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물며  나는 넷 다 해당했으니 말 다한 것이었다. 길거리의 온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느낌이랄까? 공격하거나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위협감이 느껴졌다. 옷을 긴팔 긴바지로 갈아입고 히잡을 하나 사야겠다.. 생각했다.



온갖 기 다 빨리고 나온 칸엘 칼릴리 시장, 그나마 한적한 골목




어느 날은 중간에 잠시 쉬려고 호텔에 들어왔는데, 호텔 리셉션의 남자직원이 열심히 내 방문을 따려고 하고 있었다. 청소하는 시간은 당연히 아니었다. 얼른 다가가서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깜짝 놀라며 '냉장고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려고 했다'라고 한다. 냉장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굳이 방문을 따가면서까지 들어가려고 했던 건지 의아했다. (심지어 방문이 잘 따지지 않아 끙끙거리는 모습이 더 의심을 가중시켰다.) 그날부터 모든 귀중품을 철저히 소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맥도널드에는 신기하게도 밥 메뉴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어 버거세트를 시켰다. 첫날 저녁에도 맥도널드에 갔었는데 내가 시키지 않은 이상한 메뉴가 나와서 이번에는 꼭 제대로 시키리라 다짐하고 사진까지 찍어서 확실히 주문했다. 그런데 또 다른 메뉴가 나왔다. 하 이집트... 이곳에서 소통이 한 번에 제대로 되는 것은 불가능한 건가 싶었다. 저녁을 먹고 나일강 옆 시샤바에 앉아 시샤를 즐겼다. 기분이 살짝 몽롱해지는데 속이 안 좋은 건 없는, 아주 부드러운 술을 마신 느낌이었다.



나일강을 바라보며 하는 시샤, 황홀한 맛.


내가 처음 사흘동안 느낀 카이로는, 거리도 더럽고 파리도 많고 공기 자체가 너무 탁한 느낌이었다. 이집트는 모래바람이 많이 불어 건물에 어떤 색을 칠하든 다 흙빛으로 변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흙빛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온 건물이 다 황토색이다.


카이로에 머물면서 중간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알렉산드리아, 반일투어로 다녀온 피라미드, 1박 2일로 다녀온 바하리야 사막은 이러한 카이로의 단점을 다 상쇄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아니, 이것을 빼더라도 나일강을 바라보며 하는 시샤만으로도 이집트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흙빛 문명과 푸른 지중해의 만남, 알렉산드리아




쓰레기 마을은 냄새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도, 그 위에서 고기 등 각종 식료품을 파는 모습도 모두 충격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고 음식을 해 먹고 아이들을 키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곳을 지나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백만 번쯤 들었다. 이런 곳을 구경할 수 있어서 감사한 게 아니라, 내 나라, 내 도시에 대한 엄청난 감사함이었다.


알 사예다 모스크 주변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까 어떤 분께서 입구를 알려주셔서 얼떨결에 들어갔다. 무슬림들이 실제로 기도를 하는 방이었다. 외국인인 내가 들어오니까 모두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를 앉히고는 히잡을 씌우고, 코란 책을 쥐어주었다. 같이 열심히 코란을 읽었지만 무슨 소린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중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본인들이 얼마나 알라를 사랑하고 무슬림인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계속 이야기했다. 약간 충격이기도 했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충격의 쓰레기마을. 놀랍게도 다 사람이 사는 건물이다.



엄격한 (독실한?) 무슬림일수록 얼굴을 많이 가린다. 머리만 가리는 사람, 입까지 가리는 사람, 코까지 가리고 눈만 겨우 빼꼼히 내민 사람 사람.. 더 나아가서는 그것도 부족해 눈 사이의 미간을 검게 칠하는 사람도 있다. 많이 가릴수록 알라신이 본인들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40도가 넘는 더위에도 히잡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싫을까 생각했는데, 그들은 누구보다 본인이 무슬림인 것을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우여곡절 많았던 카이로 여행 마지막(인 줄 알았던) 날 저물었고, 어느덧 카자흐스탄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카이로 싫다 싫다 다신 안 온다, 후졌다 더럽다 엄청 욕했었는데,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아쉬웠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네, 이게 애증인가 싶었다.



이때까지 사막은 몽골의 고비사막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바하리야 사막을 보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러 갔는데, 공항 직원이 나더러 카자흐스탄 비자가 있냐고 했다. 카자흐스탄은 비자가 필요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했다.

'한국인은 카자흐스탄 비자가 필요 없다.'


그러자 공항 직원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카자흐스탄 이후에는 어디로 가냐.'

'한국에 간다.'

'한국행 비행기표를 보여달라.'

'아직 구입하지 않았다. 조만간 사려고 했다.'

'그렇다면 넌 비행기를 탈 수 없다. 돌아가라.'



급하게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사려고 했는데, 마침 거짓말처럼 신용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다.

임기응변으로 전에 결제했던 비행기 결제내역의 행선지랑 날짜만 바꿔서 보여주니까, 번역기를 열심히 돌리더니 캡쳐본 말고 이메일로 직접 들어가서 보여달라고 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해서 한국행 비행기를 결제하고 결제 내역을 보여줬는데, 이미 수속 끝났다고 매정하게 창구를 닫아버린다.



애증의 이집트 공항. 이곳을 벗어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지.




이건 그냥 카자흐스탄행 비행기도 아니고 한국행을 한번 카자흐스탄행으로 바꾼 거라 거의 백만 원이 되는 값을 지불한 비행기였는데...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지 못한 채 자정이 지났다. 원래는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있을 시간에, 나는 공항 노숙을 하고 비행기값을 환불받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다.


옆 창구를 보니 나 말고도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커플이 있었다. 필로와 삼바, 중국인과 세네갈인 커플이었는데, 그들 역시 비행기 탑승 거부를 당해 나처럼 비행기를 놓친 상황이었다. 그들은 카이로에서 홍콩을 경유하여 중국으로 가는데, 홍콩 비자가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고 했다. (홍콩은 경유비자가 필요 없는 국가이며, 심지어 중국인은 아예 홍콩으로 입국을 하는 경우에도 비자가 필요 없다.)



공항 밤샘 후 지쳐버린 필로와 삼바


우리는 밤새 아에로플로트 직원과 싸우고, 공항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해봤지만 그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나 몰라라 했다. 결국 필로는 중국 대사관에, 나는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 대사관 역시 나 몰라라 했고, 한국 대사관은 그나마 계속 연락을 주며 도움을 주려고 하는 걸 보며 필로는 '중국 대사관보다 한국 대사관이 훨씬 낫네.'라고 했다.


공항 밤샘을 같이 하며 간식도 나눠먹으며, 우리는 'I hate Egypt (나는 이집트가 싫어)!'라는 말을 백 번도 더했다. 삼바는 '악몽을 꾸는 것 같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같이 싸우고 같이 욕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만약 혼자 이 일을 겪여야 했다면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우리 셋은 공항 안에서는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판단하고 택시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 카이로 시내에 있는 아에로플로트 사무실로 갔다. 카이로 사무실에 갔더니 약 40달러만 지불하면 어제 놓친 비행기 날짜를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필로와 삼바는 바로 다음날로 비행기를 바꿨고, 나는 2주 후의 비행기로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이집트에서 도망치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나의 예정에 없었던 다합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이집트 공항에서 쫓겨난 후 해가 저무는 카이로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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