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중미 여행 (4)
극락세계였다. 이 세상 모든 고뇌와 분노, 한탄을 모두 머금고 있지만 애써 누르며 뿜어내는 듯한 슬픈 푸에고 화산, 인생 여행지가 과테말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카테낭고 화산 트래킹
아카테낭고는 4년이 지금 생각해도 심장 안쪽부터 쫘악 소름이 돋는, 나의 인생 of 인생 여행지이다. 아카테낭고 화산 트래킹은 휴화산인 아카테낭고 산에 올라가서 맞은편의 활화산인 푸에고 산의 분화를 바라보는 1박 2일간의 트래킹이다. (활화산에 직접 올라가면 아마 죽을 것이다.) 아침에 출발해 6시간 정도 산에 올라가서 베이스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새벽 네 시에 깨어나 두 시간을 또 올라가서 일출을 본다. 그리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내려와서 아침을 해 먹고 하산하는 일정.
1박 2일을 계속 붙어있기 때문에 함께 하는 멤버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함께한 멤버는 나 포 함 세명이었다. 스페인에서 AL, 트래킹 가이드 과테말라인 ANGELO,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스페인 남자 간호사인 AL은 말도 잘 통하고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다섯 시간 내내 얘기하며 올라오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ANGELO는 '좋게 말해 독특한' 사람이었다. 재미없는 불편한 농담과 터치로 우리를 불편하게 해서, AL과 나는 가이드 몰래 쯧쯧 하는 눈빛을 주고받곤 했다.
키르기즈스탄의 알틴 아라샨도 왕복 10시간이 넘게 걸렸으므로 여기도 만만하게 봤는데, 일반 산인 알틴 아라샨과 화산인 아카테낭고는 차원이 달랐다. 명색이 화산인지라, 재로 뭉쳐진 것 같은 자갈들이 많다. 때문에 발이 쭉쭉 미끄러진다. 1미터 앞으로 내딛으면 30센티 뒤로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저녁 5시가 되기 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고, 힘들어서 잠깐 잠을 잔 뒤 토마토 파스타와 핫초코를 먹었다. 가이드가 만들어준 밍밍한 토마토 파스타는 진짜 맛없는데 진짜 맛있다. 다섯 시간 추위에서 등산한 뒤 먹는 음식은 아마 불어터진 라면이라도 맛있을 것이다.
모닥불에 구워 먹는 마시멜로는 구워 먹었다 달콤하게 사르르 입 안에서 녹는 것이, 스쿠버다이빙 후에 들이키는 맥주만큼 맛있었다. 극락세계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캠프는 해발 3800m에 위치한다. 여기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새벽에 두 시간을 더 올라가야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발 4000m의 정상이 나온다. 안개가 자욱해 화산은 볼 수는 없었지만, 계속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추워서 레깅스 두 개를 겹쳐 입었다. 8월이었지만 산 위는 한겨울이다. 고산 지대에다 날씨까지 추우니 움직임이 둔해진다. 하지만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냄새와 저 멀리 들려오는 화산 폭발음에 청각과 후각은 예민해진다.
잠들기 직전, 안개가 걷히고 드디어 푸에고 화산이 보였다. 야영을 하면서 도시의 불빛을 배경으로 활화산 푸에고의 멋진 야경과 분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 끊임없이 펑펑 터진다. 가끔은 진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AL과 모닥불 매연 앞에서 눈물 콧물 질질 짜며 이야기를 나누다 텐트에 들어갔다. 내일 정상에서 화산 일출을 볼 수 있길 바라며.
텐트가 춥고 불편해서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 완전히 눈을 떴다. 4시쯤 다 같이 일어나, 분화구의 가장자리를 걸으며 정상으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상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어제 올라온 다섯 시간보다 이 두 시간이 훨씬 힘들다. 살을 에는 추위에 바람까지 매서웠지만, 나는 한겨울에 바이칼 호수에 치마 입고 구두 신고 다녀온 몸이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데 진짜 춥긴 엄청 춥다.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잠깐만 들고 있어도 손이 꽝꽝 얼 정도였다.
정상에 도착해서 바라본 푸에고 화산의 일출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이곳에서는 멕시코에서 엘살바도르까지, 태평양연안에서 앤티가 계곡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화산 체인을 볼 수 있다. 30년 가까이 살면서 본 대자연 중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황홀했다. 짜릿한 전율이었다. 자연을 보고 ‘멋지다, 신기하다’라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눈물 날 정도로 울컥한 건 처음이었다.
이 세상 모든 고뇌와 분노, 한탄을 모두 머금고 있지만 애써 누르며 뿜어내는 듯한 슬픈 푸에고 화산, 인생 여행지가 과테말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활화산에 올라가서
용암열에 마시멜로 구워먹기,
파카야 화산
파카야 화산은 안티구아와 매우 가깝고 낮은 화산이라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다. 파카야 화산으로 가는 버스 옆자리에는, 멕시코계 미국인 에드가 앉았다. 성격이 아주 좋아서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유쾌하고 나랑 개그코드도 잘 통하는 활발한 친구였다.
파카야 화산은 1시간 정도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험한 아카테낭고에 비하면 그냥 동네 언덕 수준이었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비가 엄청나게 내리기 시작했다. 근데 다들 어떻게 알고 우비나 우산을 가져왔다. 다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왔나 보다. 안 가져온 사람은 단 두 명, 에드와 나.
에드가 엄청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왜 금세 친구가 됐는지 알겠다. 이 많은 사람들 중 준비성 없는 사람 딱 우리 둘이네!”
우리는 쫄딱 젖은 채로 파카야에 올라왔다. 도착할 때쯤 되니 다행히 비가 많이 그쳤다. 마시멜로우를 꼬챙이에 끼워 화산열에 구워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맛있었다. 파카야 화산에서는 용암이 흐르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티구아 주변에는 화산이 많아, 진동이 간헐적으로 계속 느껴진다.
젖은 채로 추위에서 떠느라 몸이 많이 지쳤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더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는 파카야 화산이다. 지금도 파카야 화산을 떠올리면 비와 용암, 그리고 쫄딱 젖은 채로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웃고 있는 에드와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요정의 호수, 셰묵 참페이
Semuc Champey
안티구아에서 편도 10시간, 왕복 20시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요정이 살 것 같은 아름다운 에매랄드빛 계단식 호수를 보고 싶어서 강행했다. 안티구아에서 세묵 참페이를 가려면, 코반과 란킨을 지나야 한다. 둘 다 관광지 느낌은 하나도 나지 않은 현실 과테말라 느낌의 소도시이다.
'란킨에서 셰묵 참페이 앞 호스텔까지는 어떻게 가지?'
하지만 곧 그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란킨에서 내리자마자, 트럭과 벤의 여러 기사님들이 우리를 향해 외친다.
“파차마야!”
“그링고스!”
“아루마!”
각각 호스텔에서 픽업을 나오는 것이다. 픽업 예약? 따로 연락? 그런 것 필요 없다. 안티구아에서 오는 버스가 언제쯤 도착하는지 대충 알고 다들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파차마야 호스텔을 예약했기 때문에, '파차마야!'를 외친 아저씨의 벤에 올라탔다.
란킨에서 파차마야 호스텔까지는 한 시간 조금 안 걸렸는데, 가는 길이 정말 말도 못 하게 덜컹거리고 꼬불거린다. 파차마야에서 셰묵 참페이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데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경사가 가파른 곳도 많지만, 화산 트래킹까지 한 나에게는 이 정도는 그냥 동네 언덕이었다.
정상까지 가고 나면, 말로만 듣던 셰묵 참페이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셰묵 참페이는 스페인어로 '산속의 호수'라는 뜻이다.
나는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기분이 들고 너무 행복해서 계속 웃음이 난다. 더군다나 이런 예쁜 광경을 보며 맑고 아름다운 물속에서 물놀이를 하니, 진정한 지상낙원, 유토피아에 온 느낌이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신나게 놀다 보니 목이 말랐다. 주위에 물 파는 곳이 없어 쑨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호수 물 마셔도 되겠지?”
“안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내려가서 물 사 올까?”
“괜찮을 거야. 그냥 마실래! 어차피 계속 밑으로 흐르는 물이잖아.”
물이 깨끗해 보이길래 벌컥벌컥 마셨다. 맑은 호수의 물은 너무나 시원하고 상쾌했다. (하지만 이날 밤, 호수의 물을 들이켠 것을 미친 듯이 후회하게 된다.)
저녁에는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콜롬비아에서 온 여행자들과 같이 맥주도 마시고 둥그렇게 서서 춤도 추고, 진정한 라틴 감성을 느끼는 흥겨운 밤을 보냈다.
하지만 이날 밤, 나는 전무후무한 배탈로 화장실을 스무 번쯤 들락날락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빛깔의 물속에는 세균이 바글바글 했나 보다.
고난의 하룻밤이 지나고, 안티구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일단 란킨으로 다시 내려가기 위해, 트럭의 짐칸에 실려서 서서 갔다. 근데 이게 또 나름 또 다른 재미이다. 배탈이 나 낫지 않아 조마조마하긴 했는데, 같이 탄 영국 의대생이 준 약을 먹고 뭔가 안심이 되었다. 덜컹거릴 때 우아아아! 다 같이 소리 지르며 신나게 란킨에 도착했다. 웃음 폭발의 한 시간이었다.
란킨에서는 각자 예약한 버스를 타고 다시 안티구아로 향한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코반에 잠시 멈춰 점심시간을 가졌다. 다 먹고 다시 버스에 탔는데,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버스 탑승객들 명단체크를 하는데, 버스기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단다. 그래서 내리란다. 이미 란킨에서부터 두 시간을 타고 왔는데.
알고 보니 란킨에서 안티구아로 가는 버스는 여러 대가 있는데, 내가 예약한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탄 것이다. 출발 전에 아무도 체크를 하지 않아서 틀린 버스를 타고 그대로 코반까지 온 것이다. 이 버스를 계속 타고 싶으면 100 케찰(17000원)을 내라고 한다.
이게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셰묵 참페이에서 맛있는 것을 잔뜩 사 먹느라 현금이 거의 탈탈 턴 수준으로 하나도 없었다. 안티구아 도착한 뒤에 돈을 준다고 해야 하나, 여기서 내리면 안티구아행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캐나다인 아저씨가 갑자기 기사 아저씨에게 말한다.
“제가 대신 낼게요.”
아내분과 함께 여행온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고마워하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엄청 큰 도움도 아닌데 뭐. 다음에 우리가 한국 가면 좋은 곳 구경시켜 줘~ 내가 이번에 너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준 만큼 너는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면 되는 거지! 인생이 원래 그렇게 돌고 도는 거야. 하하하”
세상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만 칠천 원, 큰돈은 아니지만 생판 모르는 외국인 그냥 모른 척 해도 상관없었던 일인데 말이다.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만약 내가 탄 버스에 나 같은 상황에 처한 외국인이 있었다면, 나는 쉽사리 이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내줄 수 있었을까? 나는 솔직히 그 사람이 버스에서 쫓겨나든 말든 도와주지 않고 '불쌍하다'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 같다.
남은 여정은 그 캐나다인 부부와 도란도란 즐겁게 얘기하며 무사히 안티구아에 도착했다.
과테말라.
까슬까슬하면서 포근한 마야문명, 그리고 아카테낭고.
이쪽 눈을 뜨면 찬란한 오색빛깔,
저쪽 눈을 뜨면 탄식의 잿빛 화산.
여행의 새로운 전율을 느끼게 해 준 그곳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