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떠날 때가 다가왔고, 어느덧 아메리카 대륙의 마지막 국가, 캐나다만을 남겨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멕시코 여행을 하면 할수록 이 나라의 최애 도시를 점점 더 꼽기 어려워졌다.
푸에블라
나는 푸에블라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었다! 바로 세미타(Cemitas)! 마침 시장에서 이걸 파는 곳을 발견해 먹어보았다.
세미타는 얇은 돈가스와 잘게 찢은 스트링 치즈, 루꼴라, 아보카도가 들어있는 버거이다. 맛있는 것들을 잔뜩 모아서 빵 속에 끼워 놓았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멕시코 안에서도 푸에블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저 흰 부분이 다 잘게 찢은 스트링 치즈이다.
숙소를 찾아 걸으며, 푸에블라의 벽화를 구경했다. 내세를 중시하는 멕시코인들인 만큼, 해골을 참 좋아한다.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잠시 낮잠을 자다 깨보니, 내 또래 여자 한 명이 와있었다. 그녀는 프랑스인 Fanny, 남미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쭉 올라왔다고 한다.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고, 마켓 구경도 했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타일 하나하나에 중세 멕시코인들의 예술적 감각이 콕콕 박혀있는 듯했다.
높은 2층버스에 타서 바라본 푸에블라는 또 새롭다. 페니와 함께 내일 촐룰라에 갈 계획을 신나게 세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페니는 법무 쪽에서 일을 하는 프랑스인이었다. 얌전한 듯하면서 활동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그런 아이였다. 처음 만난 친구였지만, 단시간에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공유했다. 여행, 사랑, 직업, 삶 등등...
우리의 이야기가 푸에블라 음악가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로 흘러갔다.
푸에블라를 한 시간 정도 돌며 구경시켜 주는 야간버스를 타고 푸에블라 곳곳을 구경했다.
다음 날 페니와 길을 걷는데 망고 상인이 있길래, 망고를 사 먹었다.
“칠리 뿌려줄까?” 묻길래,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고, 페니는 많이 뿌려달라고 했다.
망고 상인이 페니에게 “너 정말 제대로 현지화되었구나!”라고 했다. 페니가 뿌듯해했다. (스페인어로 말해서 페니가 통역해 주었다.)
페니가 한번 먹어보라고 해서 칠리가 뿌려진 망고 먹어봤는데, 진심으로 뱉고 싶었다. 맛있는 망고에 칠리를 뿌려 먹는 것은 누가 처음 생각한 발상인지 모르겠다.
페니가 혼자 와보았던 맛집에 날 데려가 주었다. 내부 인테리어가 엔틱하고 너무 예쁜 식당이었다. 나는 중남미의 전통음식인 몰레(Mole)를 제대로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곳에 있길래 시켜보았다!
몰레는 카레랑 약간 비슷한 소스 느낌인데, 향이 강하지는 않지만 엄청 고소하고 살짝 달큼하며 부드러운 맛이다.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재료라는데 완전히 동의한다.
갈색의 진한 소스가 몰레. 중독성 있는 마력의 소스.
제대로 된 몰레도 먹어보고, 멋진 레스토랑도 알게 되고 너무 좋았던 시간이었다. 분위기도, 음식도, 같이 간 사람도 완벽했던 곳이었다. 마법 도시 같은 푸에블라에서, 마법에 걸린 것처럼 행복한 시간이었다.
페니 덕분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푸에블라. 페니에게 고마워하며, 그리고 나도 누군가가 어떤 장소를 나 덕분에 좋은 곳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며, 푸에블라를 떠난다.
꼬불꼬불 알록달록,
과나후아토
한 달 전 칸쿤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그 험하다는 멕시코라는 나라를 무사히 여행할 수 있을까 걱정 반, 멕시코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기대 반이었다. 이제 그 여정이 끝나고 있다니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과나후아토, 산미겔, 멕시코시티 이 3 대장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직 아쉬워하기는 이른 상황이었다.
과나후아토는 식민 시기에 은광과 함께 발전하면서 부유해졌고, 화려한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지형이 산골짜기처럼 되어있어서 터널과 수로가 많아 독특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내용보다는 영화 '코코'로 이 도시를 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가 바로 과나후아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멕시코에서는 망자의 날이 되면 해골 가면을 쓰고 축제를 한다.
과나후아토에 도착하자마자, 아직도 이름은 모르는 타코도 브리또도 아닌 멕시코 음식을 먹었다.
이것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요. 빵 안에 고기와 치즈를 담아서 먹는 멕시코 음식.
당시에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주최하는 투어를 예약해서, 여러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간 곳은 한국으로 치면 납골당 겸 기념관 같은 곳이었는데, 무덤같이 않게 너무 아름다웠다.
누군가에겐 무덤인 곳이 누군가에게는 관광지가 된 것이 기분이 묘했지만, 이 아름다운 광경에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삐삘라'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이다. 식민정부의 억압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멕시코의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번졌다. 이 분을 기리기 위한 곳이 바로 삐삘라 전망대인데, 낮과 밤이 모두 멋졌다.
삐삘라 전망대에서는 저 노란 교회와 과나후아토 대학교가 한눈에 보인다. 아름다워서 치안이 괜찮을 것 같지만, 절대 괜찮지 않으니 여자 혼자는 밤에 절대 가면 안 된다.
과나후아토 대학교에는 스페인어를 배우러 온 유학생이 많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아저씨 역시 이곳에서 어학과정을 수료하고,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한국 교민이셨다.
외딴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느낌은 어떨까, 나도 이집트나 멕시코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궁금했다.
과나후아토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예쁜 골목이 많다. 그중 '사랑의 골목'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방문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 커플 사이에 끼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가 좋아하는 멕시코감성 깃발이 즐비한 과나후아토 골목에서의 사진과 함께, 이제 산 미겔 데 아옌데로 떠나본다.
노랑분홍 동화마을,
산 미겔 데 아옌데
과나후아토에서 산미겔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시안 남녀 두 명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아시안을 만난 게 괜히 반가워서 쳐다봤더니, 남자애가 나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눈치채고 먼저 말을 걸어준다.
"어디 나라 사람이니?"
그 둘은 홍콩에서 온 플로라와 브라이언. 커플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아주 친한 친구란다. 둘 다 너무 성격이 좋아서 버스로 오는 내내 즐거운 말동무가 되어주고, 나의 캐리어도 끌어주며 숙소까지 바래다 주기었다. 같은 숙소이길 내심 바랬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이 아이들과 너무나 즐겁게 산미겔에서의 1박 2일 일정을 함께했다.
도착하자마자 플로라, 브라이언과 함께 먹은 중국음식. 얼마 만에 맛보는 아시아 음식인지, 셋이 감탄하며 먹었다.
라틴 스웩이 느껴지는 풍류에 이끌려 간 광장에는, 악사들과 행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음악과 길거리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대천사 산미겔 교구 성당 앞의 예쁜 거리의 곳곳에는 타코 노점상이 즐비했다. 거리 곳곳이 우리에게 '멕시코에 온 걸 환영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브라이언과 플로라를 만나서 전망대를 들렸다 마켓을 구경했다. 전망대 옆에 기념품샵이 있어서, 플로라와 함께 기념품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브라이언은 기념품 앞에서 신난 우리를 신기해했다. 여자들은 참 이해할 수 없다며.
플로라는 기념품을 같이 고를 친구가 생겨 너무 신난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산미겔 데 아옌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예쁜 도자기 술잔을 구입했다.
여섯개나 사 와서 지금 신혼집에서 잘 쓰는 중이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보고 싶은 아이들, 플로라와 브라이언! 그때 대학에 갓 입학했던 플로라는 지금은 멋진 간호사가 되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알록달록 길을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왜 이곳이 콘데나스트 트래블러(세계적 여행잡지)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인지 알 수 있는 거리가 나온다. 조명이나 거리의 간판 없이도 아름답고, 잘 보존된 거리가 역사적 장소들과 함께 남아있었다.
낮의 산미겔 대성당은 어두운 밤만큼이나 낮에도 예쁘다. 어떻게 성당을 분홍빛으로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 그 분홍빛이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은은하니 고상하게 아름답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꼭 다시 이곳에 오겠다고 다짐했다. '같이 오면 그땐, 여기 처음 왔을 때 저런 다짐을 했었다고 그 사람에게 꼭 말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남편은 멕시코에 별로 안 가고 싶다고 한다.)
멕시코시티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쉬웠던 중미 여행. 멕시코 동쪽 끝 칸쿤에서 시작해, 과테말라를 거쳐 다시 멕시코까지 이어진 중미 여정.
그 마지막 종착지인 멕시코시티였다.
멕시코시티 라콘데사의 마켓 입구. 예쁜 수공예품이 많다. 소나로사, 라콘데사의 거리
멕시코시티에서 내가 간 곳을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광장과 대성당, 숙소가 있는 멕시코시티 중심 Centro
유명한 도서관과 마트, 시장이 있는 Guerrero & Buenavista
멕시티의 최대 번화가 Zona Rosa
트렌디한 동네 La Condesa
멕시코시티의 곳곳에는 멋진 벽화가 많았다. 역시 텍사스와 멕시코가 가까워서 그런가, 텍사스에서 보던 벽화랑 비슷한 느낌이다.
인터스텔라 도서관으로도 알려져 있는 바세콘솔로스 도서관은 독특한 내부 구조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매우 조용하고 한적했다. 이 도서관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엽서 쓰기였다.
엽서 쓰기는 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여행 중 이런 취미 하나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세 명에게 엽서를 쓰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흘렀다.
거리와 노점상,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는 이 시간, 느린 걸음으로 멕시코시티를 느껴본다. 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중간에 지하철을 탔다.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여성칸이 따로 있다. 남자가 못 타게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외국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멕시코와는 달리, 실제로 멕시코는 이런 여성에 대한 배려도 있는 곳이다.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에 있는 국립궁전은 대통령 집무실과 행정부처, 의회 장소로 쓰였던 홀이 있는 곳이다. 궁전 2층을 향하는 계단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거대 벽화 '멕시코의 역사'가 있다. 이 작품은 멕시코 역사에 관한 주요 사건들을 담고 있다.
멕시코시티 대성당과 궁전, 광장 앞에 있는 거리에서 신기한 디저트를 팔길래 먹어보았다. 바나나를 튀기고 시럽에 잔뜩 버무린 후 위에는 연유를 잔뜩 뿌린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나의 취향임을 알 수 있었다.
멕시코시티는 고지대라서 생각보다 날씨가 서늘하다. 그래서 찬찬히 산책하기 딱 좋다. 여러 달 동안 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를 옮길 때마다 드는 느낌이 있다.
정든 이 나라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가는 것에 대한 설렘.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중앙아시아도, 시베리아도, 중동도, 지중해 국가들도 하나하나 모두 특별하고 좋았다. 그래서 '중미가 단연 원탑이다!'라고 말하기에는 내 사랑 중앙아시아한테 좀 미안하다. 하지만 멕시코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 다채로운 문화, 다양한 액티비티 등 형형색색 매력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내가 만약 장기출장을 오거나 2-3년 정도 해외에서 살 일이 있다면, 이 나라로 오면 참 좋겠다 싶었다. 실제로 나는 한국에 돌아온 뒤 멕시코로 이주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멕시코를 좋아한다. 다시 멕시코를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행 중 일기장에 적어본 중미의 매력 해가 저물고, 어제까지는 미처 보지 못했던 멕시코시티의 현대적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멕시코를 떠나기 직전, 소깔로(광장)에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이 라틴 스웩인가 싶었다. 슬쩍 껴서 같이 손짓 발짓을 해본다. 비록 몸치지만, 그냥 흥겹다. 이 분위기에 취해 잠시 바라본다. 그저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정해진 멤버도, 동작도 없다. 그냥 끼고싶으면 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