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연재 May 06. 2023

널 기다리고 있었어, 미국 콜로라도

10년 만에 방문한 두 번째 가족

창밖으로 눈밭과 엘크를
내다보는 시간을 참 좋아했었던
꿈많은 10대 소녀는,
어느덧 꿈보다는 고민과 걱정이 많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록키산맥을 바라보며 먹는 서브웨이는 그야말로 감칠맛!





록키산맥과 엘크, 그리고 두 번째 가족이 있는 곳, 콜로라도로 향했다.


10년 만에 미국에 방문한 목적은 사실 록키산맥과 엘크가 있는 그곳, 콜로라도에 가기 위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와 텍사스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콜로라도에 도착했다.


콜로라도 덴버 시내. 콜로라도 깃발이 인상적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미국 콜로라도에서 1년간 유학을 한 적이 있다. 콜로라도에서 설산과 엘크, 사슴들, 그리고 따뜻한 미국 가족과 함께하며 좋은 기억이 참 많았다. 그때 당시의 홈스테이 가족이 너무 다시 만나고 싶었고, 이십 대 후반이 된 후에 만나는 콜로라도는 또 어떨지 느껴보고 싶었다. 유학시절 이후로 나도 미국에 간 적이 없고, 그 가족도 한국에 온 적이 없기에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원래 처음 배정받았던 홈스테이 가족과 불화가 있던 나를, 딸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주고 보듬어 준 참 고마운 가족이다. 꾸준히 연락은 해왔지만 서로 오가기는 쉽지 않아 정확히 10년 2개월 만에 만난 것인데, 그 10년의 간극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던 집 안팎의 풍경. 헤일리도 그대로, 나무도 그대로. 강아지는 새로 온 식구.


다만 10대의 고등학생 소녀들은 20대 후반의 백수가 되어있었고(그땐 나의 홈스테이 자매인 알렉산드리아도 나도 백수였다), 우리가 마시던 음료는 콜라에서 맥주로 바뀌었고, 당시에 키우던 강아지 쿠키와 스펑키는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다. 마리화나가 불법이던 콜로라도는 어느새 마리화나 합법화가 되어있었다.


콜로라도 주 자체가 록키산맥에 걸쳐져 있는데, 내가 살던 동네인 코니퍼(Conifer)는 그중에서도 높은 지대에 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10월부터 4월까지 반년 동안 눈이 내리고, 어디를 돌아다녀도 엘크와 사슴을 쉽게 볼 수 있는,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다시 콜로라도에 오는데 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찌르르했다.


콜로라도 도로를 달리다 보면 볼 수 있는 풍경. 참 자연친화적이다.



창밖을 내다보면 엘크가 한 무리씩 보이던 우리 집.


'맞다, 10년 전에도 난 창밖으로 눈밭과 엘크를 내다보는 이 시간을 너무너무 좋아했었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문다. 그땐 걱정보단 꿈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인지 꿈보다는 고민과 걱정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닌가, 십 대 시절의 나는 나름대로 걱정이 한가득이었을지도 모르지. 지금의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 방 창밖으로 내다 보이던 풍경. 엘크와 아이컨택 해본다.



10년 전에는 마음껏 여행을 할 수 없었다. 외국인 고등학생 (심지어 교환학생) 신분이라 차가 없기도 했고, 평일엔 학교 다니랴, 주말엔 숙제하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홈스테이 여행을 즐기는 가족이 아니어서 록키산맥도 제대로 한 번 가보지 못했었다.


다시 만났을 때, 홈스테이 가족이 나에게 미안해했다. 10년 전에 너무 집 앞에 있는 산에만 가고 콜로라도의 다른 좋은 곳들은 구경을 충분히 못 시켜줬던 것 같다고. 그땐 미국 부모님 두 분 다 너무 바쁘셨다.


아니라고, 그땐 그게 너무 즐겁고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꼭 전하고 싶었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방문한 미국은 말 그대로 '자유의 나라'였다. 홈스테이 자매인 알렉스, 헤일리와 함께 다닌 덴버, 모리슨, 록키산맥, 그리고 콜로라도 구석구석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10대였던 우리가 이젠 운전도 하고, 맥주랑 와인도 마시고...... 그때나 지금이나 날 단순히 손님이 아닌 가족으로 생각해 주는 것이 편하고 좋고 감사했다.

코니퍼 옆 동네 모리슨. 헤일리 친구가 피자가게를 오픈해서 놀러갔다.



콜로라도에 다시 오니 고등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산, 그리고 사슴들과 겹쳐져 보인다.

그때 첫 번째 홈스테이 가족과의 불화도, 한국에 돌아가고 난 후의 학업 걱정도,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생애 작은 점일 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힘들 때마다 읊조리던 노래 가사처럼.


잘 생각해 보면 지금 이런 두려움 따윈
짧은 생에 작은 점일 뿐
주저앉아 웅크릴 필요 없잖아
먼지처럼 툭 가볍게 다 털어낼 수 있잖아
옛일인 듯 기억조차 없는 듯
선물 같은 내일만 생각하면서
웃는 거야 그래 그렇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별일 아냐 흔한 일이잖아

- 서영은, '웃는 거야'


앞으로 인생에서 맞닥뜨릴 힘든 일들도 그저 작은 점처럼 지나가길, 먼지처럼 툭 털어내지는 일이길.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곧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지 않을까.





미국 부모님께서는, 나중에 결혼할 사람과도 콜로라도에 꼭 함께 다시 오라고 하셨다. 지구 반대편에 또 다른 내 집, 내 가족이 있다는 것이 너무 따뜻했다. 청소년기 때의 풋풋함은 사라졌지만, 성인이 되어 만나니 의외로 더 편해지고 헤일리, 알렉스와 함께 나누는 대화의 범위와 깊이도 늘어난 것 같아 좋았다. 즐길거리가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

내가 애플파이를 엄청 좋아하는걸 역시나 기억하고 계셨다. 다같이 와인 한잔씩 하며 홈메이드 애플파이를 먹으니, 일분 일초가 마음이 따듯했던 시간.




록키산맥을 오르며 느낀 건, 중앙아시아의 산과 미국의 산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산의 거대한 느낌이고, 중앙아시아의 산은 아늑한 느낌이 든다. 중앙아시아의 산은 중간중간에 평원이 펼쳐져있고, 작달막한 호수와 계곡도 있는 포근한 느낌이라면, 미국의 산은 더 단단하고 강한 느낌이 든다.


콜로라도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헤일리와 나는 함께 덴버 공항으로 갔다. 나는 멕시코로, 헤일리는 이스라엘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약속했다.


"또 다른 10년이 지나기 전에 꼭 다시 만나자!"


셋이 함께 떠난 록키산맥 로드트립, 셀프 타이머 맞춰놓고 한 컷.




이전 16화 미지의 교차점, 중앙아시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