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삶을 사랑한다고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음이 놀라웠다. 나도 그처럼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 되기'는 평생 풀지 못할 영원한 숙제 같았다.
세계여행의 끝자락, 내가 상상해 왔던 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해냈어! 최고야! 나 자신 너무 사랑해, 뭐든 다 할 수 있어!'
하지만 상상과는 달리, 나의 속마음은 이거였다.
'막막하다. 한국 가면 이제 현실이구나. 어떡하지?'
세계여행은 황홀했고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았지만, 한국에 돌아간 후에 마주할 삭막한 현실이 무서웠다.
당시 나는 의학계열 편입을 결심한 상태였고, 곧 시작될 수험생활이 두려웠다. 용기가 나지 않아 미뤄오던 결심을 드디어 한 것만으로도 큰 결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또 겁이 났던 것이다.
캐나다의 전통 디저트인 '버터 타르트'로 달래본 세계여행 끝의 아쉬움.
키르기즈스탄 여행을 하며 친해진 캐나다인 친구 앤드류를 밴쿠버 공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자연과 액티비티를 좋아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지향점이 일치해 빠르게 친해진 친구였다. 밴쿠버 일정의 절반은 앤드류와 함께하고, 나머지 절반은 혼자 다닐 계획이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미국 환승을 거쳐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수상해 보였는지, 입국 심사관한테 끌려가서 두 시간 넘게 심문을 받았다. 짐을 다 풀어서 샅샅이 뒤지고(속옷 수까지 운운), 직업이 뭐냐, 은행에 잔고가 얼마나 있냐(은행 어플 당장 켜보라고 명령) 등등......
심지어 앤드류에게 직접 전화해서 내가 말한 정보랑 걔가 말한 정보가 맞는지 일일이 확인했다.'너희 로맨틱한 관계야?'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결국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앤드류와 직접 대면까지 한 다음에 나를 풀어주었다. 내가 왜 수상해 보였으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부정한 일을 하며 불법체류를 할 것으로 의심을 했던 것 같다. (나 그렇게 없어 보였나......) 그렇게 약간은 찝찝하게, 캐나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밴쿠버의 첫인상은 핀란드 헬싱키의 대형버전에다가 멋진 자연이 추가된, 굉장히 청량하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캐나다의 다른 지역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깨끗한 도시에도 빈민촌, 일명 텐트촌이 있었다. 이곳도 대마가 합법이라 마약 구걸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LA의 텐트촌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절대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은 곳이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걸, 특히 자전거를 타고 처음 가보는 곳을 휘젓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마침 앤드류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자는 제안을 했다. 여행자의 마음을 간파당했다.
스탠리 공원에는 이렇게 토템신앙을 떠오르게 하는 장승들이 있었다. 서양에서 이런 걸 보니까 신기했다.
밴쿠버 항구의 밤의 모습
앤드류가 가끔 간다는 '구수'라는 한식당에 같이 갔다. 떡볶이랑 비빔밥을 좋아하는 나의 캐나다인 친구.
사실 밴쿠버에 열흘이나 머물면서 원래 계획은 거창했다. 옐로나이프에 가서 오로라도 보고 싶었고, 밴프(Banff)에 가서 캠핑도 하려고 했다.
몇 달간 이어진 세계여행이 너무 행복했고 자기애도 자신감도 최대치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가서 현실에 복귀하려니, 그리고 돌아가면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수험생활이 시작된다니, 너무 막막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욕심과 현실의 간극은 불행이라는데, 욕심은 높고 현실과의 간극을 채울 자신감은 없으니, 마음이 지옥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는 왜 이 찬란함을 마음껏 즐기지 못할까,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뒷일은 가서 생각하고 제대로 즐기고 올걸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밴프 캠핑은 접어두고,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의 캠핑을 떠났다. 캠핑 후에 배를 타고 밴쿠버 아일랜드, 그리고 빅토리아 아일랜드까지 한 바퀴 돌고 다시 밴쿠버 시내로 돌아오는 동안, 키르기즈스탄에서는 듣지 못했던 앤드류와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짧은 캠핑을 했던 Porteau Cove Campground
IT 업계에서 일하는 앤드류는 일 년에 아홉 달은 일을 하고, 세 달은 통째로 휴가이다. 휴가인 세 달 동안은 집을 에어비앤비를 놓고 본인은 해외로 여행을 다닌다. 평소에는 퇴근을 네시쯤 하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암벽등반을 한다.
자신의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꽤나 만족스럽다는 앤드류는, 자신감 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I love my life!'
신기하면서 약간 충격이었다. 얼마나 내 삶을 사랑하면 저렇게 자신 있게 남에게 '나는 내 삶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앤드류조차, 밴쿠버에서 쭉 살 생각은 없다고 했다. 본인은 스페인에 대한 로망이 항상 있었고,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 향후 5년간 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했다. 현재의 삶을 사랑한다고 꼭 지금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밴쿠버 아일랜드는 밴쿠버 속의 밴쿠버 느낌이었다.
밴쿠버에 가기 전까진 전혀 몰랐는데, 밴쿠버에는 한국인들이 정말 많다. 생각보다 더 많다. 자전거 대여점 직원들도, 카페의 손님들도 한국인들이 많았고, 내가 잠시 머물렀던 숙소 역시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레지던스 호텔방 하나를 사서 주방과 방 하나는 본인들이 쓰고, 나머지 두 방은 여행자나 유학생에게 임대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분들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돌파구를 찾다가 북미 이민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미국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것이 무서워서 캐나다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밴쿠버에서 슈퍼를 운영하셨는데, 영어는 하나도 못 하셨다. 그래도 이곳에서 살며 장사하는 데 아무 지장 없다고 하셨다.
캐나다는 막연히 '살기 좋은 나라! 영주권도 잘 나오고 복지도 좋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만약 내가 이곳에 와서 정착하고 산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곳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학생들과 이민자들이 존경스러웠다.
오후 네다섯 시면 불이 모두 꺼지는 호텔 맞은편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며 든 생각, '모든 캐나다인들이 앤드류처럼 자유롭게 살까?'
밴쿠버의 도심 전경을 바라보며, 내가 이곳의 일원이 되어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상상해 본다.
앤드류와의 일정이 끝나고 다시 혼자의 여정이 시작되었지만, 영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나의 마음은 밴쿠버 허공 어딘가를 빙글빙글 떠돌았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밴쿠버'를 검색했더니, 나랑 동갑인 밴쿠버 거주자들의 오픈채팅방이 있었다. 같은 년도에 태어난 이들이라 경계심이 더 허물어졌고, 그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된 유학생 두 명과 클럽에 가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놀면서 이런 고민들을 사이킥한 불빛과 음악들로 흩뜨려 날려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대산이는 캐나다에 온 지 15년, 민하는 1년 정도가 된 유학생이었다.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새로운 두 명의 좋은 친구들에 취해, 그리고 세계여행의 막바지라는 이 상황에 취해, 기분이 몽글몽글해진 나는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속얘기를 털어놓았다. 셋이 어깨동무로 원을 만들고는 대산이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해내고 싶은 게 있고 그걸 할 수 있는 용기만으로도 진짜 대단한 거야."
그리고 그들은 곧이어 말했다.
"바다 일출 보러 갈래?"
클럽에서 나온 우리 셋은 킷살리노 비치로 향했다. 아직은 어둑한 바다 너머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대산이의 캐나다 정착 이야기를 들었다.
열다섯에 우연한 계기로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대산이는, 부모님께 먼저 '캐나다로 유학을 가고 싶다'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렇게 캐나다에 온 지가 어느덧 15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고. 중간에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곳에서 펼칠 수 있는 만큼 크게 날개를 펼칠 거라고.
얘기하다 보니 슬슬 해가 떴다. 이 친구들과 바다를 바라보며 했던 이야기, 이들이 나에게 해준 격려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다음날부터는 컨디션이 좋아, 조지 웨인본 공원까지 걸어갔다. 잔디밭에 앉아서 경치구경 사람구경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이곳의 명문대라는 UBC 구경도 했다.
UBC 캠퍼스 앞에서 처음 맛본 레바논 음식. 컬리플라워로 만든 음식인데, 할랄음식 느낌이다. 나름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에는 이런 이색음식이 많다.
내 기억 속의 밴쿠버는 노을이 멋진 곳이다. 세계 3대 노을 중 하나인 산토리니보다 더 좋았다. 아직까지 밴쿠버 노을을 뛰어넘은 노을은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 날 밤은 차를 렌트해서 Cypress Lookout으로 가서 자그마한 차박을 했다. 밴쿠버의 노을은 정말 환상 그 자체인데, 이때 Cypress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본 노을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이것이 진짜 젊음이요 낭만이다 싶었다.
내 생에 일출 1위가 과테말라 아카테낭고였다면, 일몰 1위는 바로 밴쿠버 싸이프레스 가는 길이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감히 부족한 밴쿠버의 찬란한 노을이, 여행 막바지의 아쉬운 내 마음을 휘감으며 점차 밝아오는 도시의 불빛 속으로 곱게 흘러 들어갔다.
해가 지고 본격적인 야경이 펼쳐진다. 아, 여기가 왜 야경 명소인지 알겠다.
내가 펼칠 수 있는 날개는 무엇일까?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내 삶을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 되기'는 평생 풀지 못할 영원한 숙제처럼 느껴졌다.
여덟 달간의 세계여행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한국에 돌아가서의 삶이 더더욱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맛있는 걸 먹다가 맛없는 걸 먹으면 더 비교가 되는 것처럼, 뜨거운 걸 먹다가 차가운 걸 먹으면 그 감각이 극대화되는것처럼.
그래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또 다시 주저해도 괜찮은거라고, 자책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혹시나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창피한 게 아니라고,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거라고 나 자신을 애써 다독이며 마지막 짐을 싸본다.
내 주위에 희미하게 흩뿌려져 있는 용기, 위로, 그리고 열정도 애써 함께 쓸어 담아본다. 그리고 세계여행을 하며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소중하게 모아 두었던 행복과 기쁨들을 다시 잘 확인하고 챙겨본다. 한국까지 잘 가지고 가야하니까.
러시아 동쪽 끝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그리고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마지막 대륙인 아메리카를 떠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여행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전목마처럼,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