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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연재 May 10. 2023

세계여행 회고록, 낙원을 찾았을까

보헤미안과 직업인의 중간점

2019년 여행 당시 썼던 블로그 여행기와 일기장, 사진들을 통해 당시의 기억과 느낌을 재현하여 구성한 여행였습니다. 그때 이십 대였던 저는 어느덧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여행동안 캐리어에 넣고 다니며 썼던 일기장


돌이켜보면 8개월은 세계를 마음껏 돌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저에겐 1년도, 아니 2년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몇 달간의 세계여행으로 인해 제가 굉장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고민 많은 복잡한 성격도 그대로이고, 아마 MBTI도 그대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보낸 꿈같은 시간과 쌓은 소중한 경험들은 저에게 큰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살면서 '나 자신 너무 사랑해! 태어나길 너무 잘했어!'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엄청나게 긍정적인 경험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전까지는 이런 벅차오르는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저에게 이 여행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극히 강한 자유로움과 행복감을 느꼈던 이때를 떠올리면 마음에 행복감이 채워지며 엔도르핀이 솟습니다.


이집트 바하리야의 흑사막


내가 다음 주에 잘 숙소, 다음 달에 갈 국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유롭고 어떻게 보면 불안정한, 아주 특별한 경험입니다. 자유로운 방랑자처럼 떠돌며 여러 나라의 친구도 사귀고, 믿고 싶지 않은 황당한 경험과 꿈만 같은 행복한 경험 모두를 맛보았죠. 여러 나라들을 지나며 만났던 길고 짧은 인연들은 하나하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여행길에서는 누구나 쉽게 말을 섞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 하는 대로.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이 바로 '인생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어떤 친구가 그랬습니다. "We'll meet again soon. You know, the world is fu**ing small!"


그리고 그 친구가 주고 간 스트룹 와플. 그가 말한 대로, 참 작은 세상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닿을 수 있는.




사실 이 세계여행 이후에 큰마음먹고 했던 결심(의학 계열 편입)이 또다시 무너졌을 때는, 저의 하늘도 함께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내 방 천장이 내가 올라갈 수 있는 마지노선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상 올라가고 싶어도 뚫지 못하는 단단하고 무거운 철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후에도 사업이 하고 싶었다가, 박사 후 교수가 되고 싶었다가, 이런 마음에 다시 학교에 들어가기도 했고, 여러 번의 입사와 퇴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들쑥날쑥 그 자체였습니다. 여행 후 울며 겨자 먹기로 입사한 회사에서는 제 자리 한구석에 여행 중 산 엽서를 붙여놓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난 떠돌고 있어야 하는데 왜 이곳에 갇혀서 앉아있지?' 내지는 '난 지금 편입 준비 중이어야 하는데 왜 다시 회사를 다니고 있지?' 하는 생각을 몇 달 동안 했습니다. 현실 적응 기간이 꽤 걸렸죠.



이 여행에서 '나는 이럴 때 즐겁구나, 나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여행은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


퇴사하고 몇 달간 여행하는 저를 보며 사촌오빠가 말했습니다.


넌 이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기는 글렀다!


냉소적으로 비꼬듯이 놀리며 한 말이 아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으니, 나랑 가장 맞는 형태의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이 오빠의 덧붙임이었습니다. 꼭 남들이 지금 회사 다니니까 나도 회사 다니고, 결혼하니까 결혼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는, 살아가는 데는 수백 가지의 방식이 있다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지상낙원이라 느꼈던 곳 중 하나, 그리스 크레타 섬


저는 지금도 그 삶의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그리고 가장 행복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삶의 형태에 다가가려면, 떠돌아다니면서도 직업적 끈을 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점 가닥을 잡아가는 중입니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끈기 없는 게 저의 최대 단점인데,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자책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정신 승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무쌍함을 장점으로 계발하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재미있게'요!






현실을 피해 도망친 세계에서 낙원을 찾았을까요?

하루하루 즐거운 날이 이어졌고 '여기가 바로 유토피아구나!' 싶은 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낙원을 맛보았다고 할 수는 있겠네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몸담은 이 세계를 낙원으로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살 수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낙원일 테니까요.


저도 아직은 막연하지만, 이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보려 합니다.

이집트 바하리야의 백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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