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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연재 May 12. 2023

칼퇴를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니에요?

입사 첫 주에 들은 말

꿈같이 달콤했던 세계여행이 끝난 후, 현실을 부정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입사한 나의 두 번째 회사. 첫 회사때와는 달리 설렘 따위는 없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입사 후 맞는 첫 금요일, 팀장 면담을 했다. 입사 첫 주 소감이 어떤지, 적응하기는 괜찮은지를 나누는 자리였다. 면담 도중, 팀장이 약간 머뭇거리며 나에게 묻는다.


근데...
칼퇴를 너무 자주 하시는 거 아니에요?



"네? 칼퇴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나의 첫 회사는 정시퇴근이 당연한 문화였고, 정시퇴근을 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회사에 남아 있으면 아직 할 게 많이 남았냐고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 이상 정시퇴근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걸 갖고 뭐라고 하다니.


더군다나 나는 남들보다 30분 이상 일찍 회사에 오는 나름 성실사원이었고, 입사 첫 주인지라 약간의 교육과 자습할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오늘 안에, 혹은 이번주 꼭 끝내야 해!' 하는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오후 6시 00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는 초칼퇴를 했느냐? 아니다.

내가 퇴근시간 전부터 짐을 쌌느냐? 그것도 아니다. 엄연히 6시가 지난 시간부터 정리를 시작해, 6시 20분쯤 퇴근을 했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정시 퇴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그러자 팀장이 대답한다.


"잘못된 건 아닌데, 그래도 윗사람들이 보기에 '쟤는 별로 열심히 안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반반인 것 같아요. 하지만 더 열의가 있다면 규정집을 더 보고 간다거나 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럼 팀장님이 생각하시기에는 윗분들이 보기에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비치기 위해 몇십 분 더 앉아있다 가는 게 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날 끝내야 하는 일이 남았다면 다 하고 가는 게 맞지만, 단순히 잘 보이기 위해서 더 앉아있다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는 내가 덧붙였다.

"조금 더 앉아 있는다고 해서 효율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 내에 집중해서 규정 공부든 업무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맞아요."


"그럼 왜 이런 얘기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칼퇴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신지요?"


"그건 아니고...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네요. 나는 단지 신입사원이 높은 임원들에게 밉보일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한 얘기였어요. 암튼 퇴근 눈치 주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말아요."






그분이 '칼퇴하지 말라면 하지 말지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답이야?' 식으로 나오는 진짜 꼰대였으면, 아마 그분과 나는 아예 등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분은 말이 통하는 분이었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윗사람들 눈치를 보는 약자의 입장이기도 했다. 뒤에는 '이런 얘기하면 진짜 꼰대 같을까 봐 걱정되긴 했어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내가 생각하는 능력 있는 사원은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맡은 일을 근무시간 내에 해내는 사람이다. 물론 일이 너무 많거나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야근하는 거?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하는 것은 영 내가 그리는 그림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에는 그나마 유연한 조직이었지만, 더 보수적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더한 곳들도 많았다.


부장이 안 가서 퇴근 못하는 과장,
과장이 안 가서 퇴근 못하는 대리,
대리가 안 가서 퇴근 못하는 사원...


시트콤 속, 웹툰 속의 일이 아니었다. 금은 좀 나아졌지만, 로나 이전에는 더욱 그랬다.


입사하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되었지만, 나의 회사는 재택근무를 절대 시켜주지 않았다.

사실 내가 이 직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재택근무가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나의 10년, 20년 선배들을 보아하니, 코로나보다 더한 역병으로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재택근무에 대한 마음을 체념한 채, 간혹 한국의 회사문화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채, 한 해가 흘러갔다.


재택근무 이야기 구성은 아래와 같이 예정하고 있습니다 *^^*

1장. 재택근무를 원하게 된 이유
2장. 비IT업계, 3년차 직딩의 재택근무 도전기
3장. 재택근무의 실상
4장. 디지털 노마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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