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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연재 May 13. 2023

회사 점심시간은 자유시간이 아니에요.

점심때 쉬겠다고 했을 때 들은 말

예?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잠깐 다니던 회사에서 이사와 나 단 둘만 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40대 중반의 여자분이었는데,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다. 나를 이 회사로 데리고 온 분이기도 했다.


그분과 나는 매일 점심을 함께했지만, 어느 날은 컨디션이 별로라 쉬고 싶었다. 그분께 말씀드렸더니,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요."

"제가 지금 정말 속도 컨디션도 별로라서요. 오늘은 그냥 쉬면 안 될까요?"


정말 그날점심시간에 좀 쉬기라도 해야 오후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혼자 나가셨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분은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상사가 두 번이나 같이 먹자고
말했으면 따라오는 게 맞지.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느껴지는 공기가 달랐다.

이게 큰 잘못인가, 매일 따로 먹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처음이었는데, 딱 하루였는데.


앞으로 가끔 혼자 먹고 싶거나 쉬고 싶으면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팀에 그분과 나 달랑 두 명 밖에 없는데 이런 분위기로는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면담 요청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그분이 먼저 나를 불렀다.


잠깐 회의실에서 얘기 좀 할까요?



잘 됐다 싶었다. 회의실에서 그분이 먼저 말씀을 꺼다.


"나는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이 자유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근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때까지 간호대, 대학병원, 제약회사 등의 보수적인 집단만 거쳐온 사람이고, 내가 속한 집단에서는 모든 팀원이 점심시간을 함께 갖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어요.

그런데 전 회사에서 한 20대 사원이 '점심시간은 자유시간이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게 나에게는 너무 컬처쇼크였어요. '요즘 친구들은 저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면역이 된 상태이지만, 아무튼 나는 점심시간도 근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주임님 생각을 얘기해 봐요."


'분위기상 따라준거겠지.. 그리고 점심시간은 엄연히 법적 휴게시간인데 무슨 소리지?' 생각하며 내가 대답했다.


"저는 점심시간은 오롯이 자유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매번 점심을 따로 먹겠다고 한 거였으면 이사님 말씀도 이해는 갑니다. 업무 외에 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존중하니까요.

하지만 '매일 점심을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라는 압박이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이사님을 사람대 사람으로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자유시간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예전 회사의 경우 자유시간과 팀원 간의 결속력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매주 수요일을 '팀 런치데이'로 정했었습니다... 하하"


그 말을 들은 그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회사에서 딱 업무만 하고 끝내기에는 조직을 이끌어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근무시간 외에 얘기도 하고 조직이 유지되고 잘 굴러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 그렇다면, 일주일에 두 번은 같이 먹는 날로 정해는 건 어때요?'






그래서 그분과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나름의 타협이었다.


심지어 요일도 정해주셨다. 하하하.

월요일 목요일.

월요일은 주말 동안 뭘 했는지 나눌 얘기가 많을 것 같아서 꼭 넣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분의 의견이었다.


내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해 준 그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내 얘기를 들어주셔서 아주 꽉 막힌 분은 아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자유시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정말로 있구나 싶어 뭔가 마음이 답답해지는 하루였다.


가끔은 혼자 먹을 자유를 주시면 안될까요?



재택근무 이야기 구성은 아래와 같이 예정하고 있습니다 *^^*

1장. 재택근무를 원하게 된 이유
2장. 비IT업계, 3년차 직딩의 재택근무 도전기
3장. 재택근무의 실상
4장. 디지털 노마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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