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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캐는 광부 Mar 26. 2024

당신에게로 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까치가 울어 당신한테 편지가 오겠구나 했어요. 계속해서 울어대는 까치소리와 함께 하는 하루의 시작은 상쾌하기만 합니다. 아침과 함께 집안일 마무리 하고 잠시 유진 이를 재우는 사이에 우체부 아저씨가 왔다 갔나 봐요.


점심하려고 윗집에 올라갔더니 마루에 당신의 편지가 두툼하게 놓여있지 뭐예요.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야호”하고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편지를 쓰는 당신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당신처럼 힘든 훈련과 공부하면서 펜을 드는데 당신의 반도 못 미치는 시간을 할애하면서 펜을 못 든다는 것에 반성을 합니다.


마음만은 늘 당신과 한답니다. 지금 어디서 무슨 훈련에 땀을 흘릴까? 어두운 밤에 또 산속을 헤매며 유진 이와 나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의 한계가 도대체 어디 만큼일까 생각하며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되는 가뭄을 해소하듯 이틀 동안이나 소낙비가 하늘이 뚫린 듯 퍼부었어요. 하늘은 다시금 해맑은 미소로 따뜻한 햇볕으로 물들고 들녘엔 한가닥 시름하던 씨앗들이 고개 들고 내밀어요. 한 마리씩 날아다니는 왕벌과 노랑나비 하얀 나비들은 활짝 웃으며 빙빙빙 맴돌며 날아다녀요.


무엇을 먹으려는지 서서히 파리들과 모기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게 곧 여름이 오려나 봅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한 산에서 나의 향기를 느낀다는 당신의 말에 왜 그리 쑥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는지. 보고 싶다는 말 밖에는 쓸 말이 없어요.


며칠 사이에 유진이가 많이 컸어요. 낯 가리고 손을 어찌나 잘 빨고 노는지~ 혼자 웃고 소리 내어 웃고, 옹알이도 하면서요. 거울을 비춰주면 소리 내어 웃는 걸 보니까 다 컸다는 느낌이 드는 거 있죠. 유진이 정말 예뻐요. 하나밖에 없는 서방님과 우리의 분신 유진이. 늘 함께 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살아요.


엊그제 당신 생일이었는데 미역국은 끓여 먹었는지 아니 국이라도 먹었다면 다행이겠건만. 생일선물도 못 해 드리고 미안해요. 늘 마음뿐이네요. 목감기는 다 낳으셨는지 걱정이에요. 고된 훈련 때문에. 벌써 유진이가 100일이 지나고도 10일이 지났어요.


세월도 빠르고 요즘은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요. 이번 주엔 당신을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과 희망감에 잔뜩 마음이 들떠 있답니다.


1994년 5월 16일  


당신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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