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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캐는 광부 Apr 02. 2024

위로와 힘이 되어준 사람

유격훈련의 후유증으로 발바닥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물집이 생겨 전투화는 아예 신지도 못하고 운동화마저도 간신히 끌고 다닐 정도야. 허리통증마저 재발해서 온통 파스로 도배를 했어. 움직이는 자체가 악몽인 어제오늘 일과였어.


왜 이 지경까지 되었냐고? 지난주 외박복귀 후 엄청난 군기세례를 받으면서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유격훈련이 있었지. 유격훈련장까지 행군으로 가는데 꼬박 10시간이 걸렸는데 그때부터 내발은 중심을 잃고 서서히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지. 행군 출발 후 5시간이 경과하면서부터는 동기들도 한 명 두 명 쓰러져 후송되기 시작했어. 남의 일이 아니었지.


유격훈련 출발 전 소개 영상을 시청할 때부터 이미 다들 일주일 동안은 죽을 각오를 했어. 피 터지게 한다는 공포의 PT 체조는 그야말로 마음껏 피 터지게 하는 체조시간이었지. 그놈의 체조 덕에 원하지도 않는 똥물구덩이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몰라. 안심하고 밥 먹을 시간 물 한 모금, 휴식시간 자체도 허락되지 않는 그야말로 인간이하의 생활이었어.


조교들 역시도 다른 곳 교관과 조교들과는 완전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 눈을 절대로 볼 수 없는 선글라스에 보기에도 섬뜩한 새빨간 육각모자는 보는 내내 공포 그 자체이기도 했어. 인내라는 말을 위장해 끝없이 반복되는 얼차려와 숨 쉴 틈마저도 용납되지 않는 훈련일정 내내 정신이 혼미했지.


어느 장소를 가든 항상 뛰어서 다녀야 했고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식판과 수저를 함께 들고 다니며 필사적으로 움직여야 했지. 이건 훈련이 아니었어. 마치 포로수용소를 연상하는 듯했고 정녕 이곳이 삼청 교육대는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어.


종합장애물, 산악훈련, 공수훈련을 모두 끝마치고 마지막 유격훈련장을 퇴소할 때 모든 교관들과 조교들의 박수세례를 받으며 마음한구석 결국 난 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구석 끓어오르는 눈물 정말 참기 힘들었어.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어.


정말 견디기 힘들고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면 당신을 생각하며 우리 유진 이를 생각하며 견뎌 내곤 했어. 훈련이 끝나고 복귀행군 역시 결코 만만치 않았지. 복귀한 시간이 출발 후 10시간이 훌쩍 넘긴 밤 11시가 다 되었고 돌아와 침상에 놓여있는 친구들의 몇 통의 편지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어. 조금 서운함이 있었던 건 정작 당신의 편지가 보이지 않아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지.


학교 다닐 때도 내가 힘들어하고 어디 조금이라도 아프면 어루만저주고 찜질해 주던 생각에 더욱 당신이 그리워지고 내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실감하게 하는 것 같아. 곁에 있는 동기들은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것 같아.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편지를 받고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자신을 보며 문득 당신마저 없었더라면 이곳 훈련생활을 어떻게 견뎌나갈 수 있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드네.


외박 때 당신을 뒤로하고 기차에 올라 내려오는 동안 눈물을 머금고 서있던 당신의 모습이 떠나질 않아.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많이 힘들었지. 부대 복귀할 때의 착잡한 심정, 다시금 나의 현실로 돌아왔구나 하는 허전함,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가슴을 채웠네. 하지만 2주 후에 있을 2차 외박을 위안 삼아 눈 꼭 감고 참아내기로 했어.


어느덧 8주 교육훈련이 모두 끝나고 9주 차가 시작되었어. 이제 4주 23일 남았어. 어제는 임관사진 개인 촬영도 했어.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아. 벌써 임관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몰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당신에게 떳떳한 남편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늘 힘이 되어준 당신을 생각하며 임관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거야.

사랑해


1994년 6월 10일을 기억하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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