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아(벚나무)는 매년 봄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무다. 사람들은 봄이 시작되었음을 벚아가 피우는 꽃으로 알아채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아는 가지 끝마다 작은 꽃망울을 맺고, 마침내 첫 번째 꽃잎이 피어났다. 다른 나무들, 특히 메타(메타세콰이어)와 은비(은행나무)는 꽃잎이 나오는 순간을 기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소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벚아의 꽃잎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첫날, 가로수길은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벚아는 사람들의 웃음과 카메라 플래시에 둘러싸여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을 느꼈다. 봄을 맞이한 기쁨도 컸지만, 그 꽃이 순식간에 떨어져 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티는 그런 벚아를 보며 말없이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벚아, 네가 너무 화려하면 우리 나머지 나무들은 그저 배경처럼 보이는 걸 알아?” 메타가 말장난을 섞어 벚아에게 말을 걸었다.
벚아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날 질투하는 거라고 해도 되겠어, 메타?”
“내가 너처럼 화려한 꽃은 없어도 봄이면 자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 그래도 꽃을 피우는 건 좀 다르잖아.” 메타는 자기가 쑥쑥 자라나는 키에 더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때 은비가 조금 묵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꽃을 피운다는 건 순간적인 아름다움이지만, 그만큼 너도 부담이 크지 않니, 벚아?” 은비의 말에 벚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화려한 존재로 보이지만,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는 외로움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봄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걸 알기에 매번 최선을 다해 피우는 거지. 너희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나쁘진 않아.” 벚아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날 오후, 벚아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자신이 좋기도 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사람들은 벚아의 꽃잎이 펼쳐지는 장관을 사진으로 담았고, 일부는 꽃잎을 만지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그중 한 남자가 무심코 벚아의 가지 하나를 꺾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느티가 크게 바람을 일으켰다. 벚아와 느티, 메타는 모두 긴장한 눈으로 그 남자를 바라봤다.
“이런, 느티 형님이 화났나 보네?” 메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은비도 고개를 끄덕이며, 느티가 보호자처럼 벚아를 지켜주는 모습에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다행히 남자는 벚아의 가지를 꺾지 않고 자리를 떠났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벚아는 잠시 묵묵히 서 있었다.
“느티 형, 고마워.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어.” 벚아가 조용히 고백하자 느티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네가 조심해야 할 일이지. 사람들은 가끔 우리를 잘 모르니까 말이야.”
이 작은 사건은 다른 나무들에게도 큰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했다. 벚아는 다시 환한 꽃잎을 피우며, 사람들에게 봄을 알리는 역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남아 있었고, 벚아는 혼자서 은비에게만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