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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캐는 광부 Dec 24. 2024

홍시에 담긴 따뜻한 마음

베풂의 손길

사람은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게 배운 것들을 몸에 새기고 산다. 그것이 배고팠던 과거의 기억이든, 누군가에게 받은 따스한 도움의 기억이든, 결국 우리는 그 흔적들을 삶 속에서 표현하게 된다. 아내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녀는 생각하지 않아도 나오는 선한 행동들로 내게 깊은 감동을 준다.


얼마 전, 지인이 보내준 대동감 홍시 한 박스는 상자 가득 달콤하고 향긋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우리 둘이서 그 많은 홍시를 다 먹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다. 아내는 곧장 주변 이웃들과 단골 가게의 어르신들께 나눠주었다.


"이렇게 좋은 홍시를 우리만 먹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옆집에도 드리고, 단골 식당 갈 때 어르신들께도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그녀의 말은 단순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은 깊었다. 그렇게 아내는 홍시를 여기저기 나눠주며 환한 미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채웠다.


그러고도 남은 홍시가 꽤 있었다. 잘못하면 제때 먹지 못하고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아내는 베란다 창문 밖에 홍시 몇 개를 그릇에 담아 놓았다.


"이거 뭐 하는 거야?"

내 물음에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새들 먹으라고. 요즘 아침에 보니까 베란다 근처에 새들이 자주 오더라고. 그 아이들도 겨울엔 먹을 게 부족할 테니 홍시라도 나눠주면 좋잖아."

그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배려를 아내는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며칠 후,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진 걸 발견했다. 홍시는 온데간데없었고, 대신 새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새들도 고맙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더 기분이 좋네."


그녀의 말은 단순한 베풂 이상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마치 시골의 감나무에 겨울이 오면 새들을 위해 남겨둔 몇 개의 감처럼, 아내의 홍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 되었다. 새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겨울날, 창밖의 그릇은 그들에게 따스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아내는 평소에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녀의 선한 마음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나눌 때 더 빛난다. 그런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배운다. 베풀고 나누는 것이 단순히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그릇을 비워간 새들의 흔적을 보며 생각했다. 아내의 작은 행동이 단지 그릇을 채운 것만이 아니라, 삶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들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이웃들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베풂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손길에서 시작된다. 그 손길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곳에 따뜻함을 전하며, 우리 삶의 빈 곳을 채운다.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작은 행동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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