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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 떠난 이들을 위한 위로

슬프고 슬프다

by 서담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것이 죽은 자에 대한 위로라면, 단순히 “힘내라”거나 “용기를 가져라”는 말은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말로 위로할 수 없는 상실감 앞에서 우리는 때로 침묵하며,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최선일 때가 많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잊고 지내는 듯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져온 충격은 결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문득문득,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아버지와의 기억은 나를 멈추게 만들곤 한다.


잘해 드렸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오히려 서운하게 해드렸던 부분만 또렷하게 떠오른다.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와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속 깊은 상처로 남아 나를 괴롭히곤 한다.


아버지가 떠나신 날, 나는 생전의 기억들을 붙잡고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다.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장남으로서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입관할 때 아버지가 수의에 싸여 누워 계시던 모습 앞에서 그녀는 끝내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복받쳐 울며,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울음이 나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며, 내가 억눌렀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그냥 실컷 울어. 소리 지르고 울고 싶은 만큼 울어."

나는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그렇게 말했다.

"눈물이 다 나올 때까지 울어도 돼. 그게 아버지께 진심으로 보내드리는 마지막 인사일 거야."


그날 아내의 울음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을 때 전하지 못했던 말, 미처 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었다. 아버지와의 인연을 정리하며, 그리움과 후회 속에서도 관계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의 울음은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진정으로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내게 큰 공허함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떠난 이에게 전하는 가장 큰 위로는 그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 속에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움을 품고 사는 한, 아버지는 결코 완전히 떠나지 않으셨다.


2024년, 남은 날들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희생자들을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려 노력하며, 그들의 슬픔을 함께 느끼는 진심 어린 마음일 것이다.


떠난 이들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들의 흔적과 사랑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우리는 그들과의 추억을 기억하며, 그들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움과 상실 속에서도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 있는 이들과 더 진심 어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떠난 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위로일 것이다.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결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과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슬픔 속에서도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전하는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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