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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자연 속에 머무는 나무들의 이야기

by 서담

나무들은 각자 다른 모양과 색, 향기를 지녔지만,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느티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밤나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한 해 네 번의 계절을 겪으며, 사람들과 조용히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봄이 오면 여린 새싹과 꽃으로 희망을 전하고, 여름엔 짙은 그늘로 지친 이들에게 쉼을 주며, 가을이 되면 황금빛 잎과 풍성한 열매로 따뜻한 추억을 남기고, 겨울엔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일. 그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때로 바쁘고 무심해서, 그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무들은 알고 있다. 자신이 지켜온 시간과 그 자리의 의미, 그리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어쩌면 나무들의 생활이나 사람들의 삶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각기 다른 모습, 개성, 속도,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뿌리를 내리고,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는 존재들.


그런 나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하지 못한 말들, 전하지 못한 감정들을 나무들이 대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삶의 무게와 기쁨, 쓸쓸함과 기다림, 다가올 희망까지—그 모든 것을 계절이라는 이름으로, 바람과 빛과 그림자로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서서,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희망을 전해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나누며, 가을에는 추억이 되는 잎을, 겨울에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의미를 함께 나누고 있지.”

느티는 그렇게 속삭이며 자신과 친구들의 자리를 되새겼다.


벚아는 다시 올 봄, 사람들의 설렘 속에 피어날 꽃을 그렸고, 밤이는 가을에 다시 나눌 열매들을 떠올렸다. 소나는 그 어느 때와 다름없이 변함없는 푸름으로 곁을 지켜낼 다짐을 했고, 은비는 황금빛 잎으로 잠시라도 따뜻한 위로를 전할 그날을 기다렸다.


나무들은 비록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서로 다른 뿌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계절을 따라 흐르며,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번의 봄이 다가오고 있다.

묵묵히 겨울을 견딘 나무들은 다시 피어날 준비를 마쳤다.

그들의 가지 끝마다 머금은 설렘은,

곧 찾아올 햇살과 꽃비 속에서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에 닿게 될 것이다.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삶과 자연이 서로를 안아주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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