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흔적은 저만치
봄이 깊어가며 어느 날 아침, 숲 속과 도심에 뿌옇게 구름이 드리워졌다. 공기는 눅눅했고, 하늘에서 떨어질 듯 말 듯한 비의 기운이 가득했다. 나무들은 가만히 서서 곧 내릴 첫 봄비를 기다렸다. 겨울 동안 쌓였던 먼지와 묵은 흔적들이 이 봄비에 모두 씻겨 내려갈 것만 같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드디어 한 방울, 두 방울 차가운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빗방울은 굵어졌고, 나무들은 그 비를 고요히 받아들였다. 비는 겨우내 묵었던 나무의 표면을 부드럽게 씻어내며 흘러내렸다.
"느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빗방울이 잎과 가지 위로 떨어지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는 겨울 동안 차곡차곡 쌓였던 먼지와 외로움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마음이 후련했다. 빗소리가 더욱 거세지자, 느티는 빗속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비가 겨울의 흔적을 다 씻어 주는 것 같구나. 이렇게 깨끗해진 느낌이 참 좋아.”
"벚아"는 흐르는 빗물을 맞으며 미소 지었다. 그는 곧 피어날 꽃봉오리들을 비가 부드럽게 닦아주는 것 같아, 마음이 가볍고 행복해졌다. 벚아는 느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 저도 그래요! 겨울 동안 조금 무거웠던 가지들이 이제는 가벼워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이 비가 내 꽃들을 준비시켜 주는 것 같아 설레요.”
벚아의 말에 느티는 미소 지었다. 벚아가 곧 봄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둘은 나란히 서서 비를 맞았다. 이 봄비가 그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임을 나무들은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때 숲 속의 "소나"와 "밤이"도 함께 비를 맞으며 조용히 서 있었다. 소나는 자신의 푸른 솔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겨우내 묵은 먼지가 씻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빗물이 솔잎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나는 물기를 머금은 자신의 솔잎이 더 푸르게 빛나는 것을 느끼며 속삭였다.
“밤아, 이 봄비가 우리를 더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이렇게 깨끗해진 솔잎을 보면 나도 새롭게 시작할 힘이 나는 것 같아.”
밤이는 소나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소나야. 겨울 동안 내 열매껍질에 묻어 있던 먼지들도 이 비에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이 비가 내 뿌리까지 스며들어와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이 들어.”
밤이는 뿌리 깊숙이 스며드는 봄비의 물기를 느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역할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는 이 비가 모든 나무들에게 새롭게 자랄 기운을 전해 주는 것 같아 감사함을 느꼈다.
잠시 후, 빗줄기가 약해지고, 봄비가 잔잔히 멈추기 시작했다. 비에 젖어 윤기가 흐르는 나무들은 서로의 깨끗해진 가지와 잎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비로 인해 생기가 돌고 밝아진 숲은 이제 더 활기차고 신선해 보였다.
은비가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가 함께 이 비를 맞으니, 더 힘이 나요. 마치 서로의 존재가 더욱 깨끗해진 모습으로 느껴져요. 우리 모두 이번 봄에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아요.”
느티, 벚아, 소나, 밤이, 그리고 은비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비를 맞으며 함께 깨끗해지고 새로워진 순간을 느끼고 있었다. 이 비는 단순히 겨울의 흔적을 씻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올 계절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전해주고 있었다.
“함께 이 비를 맞으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우리는 다시 새로워졌고, 앞으로도 계속 자라날 거야.” 느티는 조용히 속삭이며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봄비 속에서 나무들은 서로의 존재를 더욱 느끼고, 다시 찾아올 계절의 변화를 함께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비로 인해 새로워진 자신을 바라보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가슴 깊이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