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삶의 길이냐, 깊이냐

by 서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한 환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어요? 짧지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는 삶과, 길지만 그저 편하게만 사는 삶 중에서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모두가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순간엔 머뭇거린다. 삶의 길이를 놓고 고민하다 보면, 삶의 깊이를 놓치기 쉬운 것이다.


짧게 타오르다 사라지는 촛불이 있다. 누군가는 그 불을 아깝다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사랑을 고백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깨달았다면, 그 촛불은 이미 충분히 자기 역할을 다한 것 아닐까?


긴 삶은 분명 복이다. 하지만 무채색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그 속에서 내가 나를 잃은 채 존재만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정말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삶’은 단지 살아 있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의미를 가지고, 방향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는 것. 때로는 두려움과 함께, 때로는 눈물과 함께 걸어가는 그 과정이 진짜 ‘사는 것’ 아닐까?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은 것을 따진다.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이익이 될지, 실패하면 무엇을 잃을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그 계산은 어느새 꿈을 미루게 만들고, ‘다음에’, ‘언젠가’라는 말에 기대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한부라는 말 앞에 서면, 그 모든 계산은 무의미해진다. 시간은 더 이상 무한하지 않고,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비로소 묻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모두가 그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진 않다. 하지만 그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다. 그저 조금 더 늦게 올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아직 건강하고 걸을 수 있을 때,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을 때, 두려움보다 후회가 더 무서운 삶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시간, 나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일이다. 그게 1년이든, 10년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선택한 삶의 모양이 만족스럽다면, 그건 분명 잘 살아낸 시간이다.


오늘도 우리는 다시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진심으로 답할 수 있다면, 삶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의미 있는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한 줄 생각 : 길게 사는 삶보다, 나답게 사는 하루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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