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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삶엔 미련이 없다

온전한 진심

by 서담

“진급하지 않은 게 아쉽지 않아요?”

간혹 그런 질문을 받는다. 군복을 벗은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의 22년 군 생활을 아는 지인들은 여전히 묻는다. “장군 달 수도 있었는데... 억울하진 않으세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늘 같은 대답을 건넨다.

“1도 아쉽지 않아요. 억울한 마음도 없고요. 정말로요.”


누군가에게는 미련일 수 있는 자리, 누군가에게는 꿈이었을지 모르는 계급. 그러나 나에겐 그 자리가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다. 내가 바랐던 건,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군인’으로 살아내는 일이었다.


군생활 2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단 하루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었다. 총 대신 책임을 들었고, 계급장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려 애썼다. 상관으로서, 선임으로서, 때론 후임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나는 ‘군인다운 군인’이 되고 싶었다.


출근길 아침, 한겨울의 칼바람 속에서 손끝이 얼어가며 훈련을 준비하던 시간들. 말단 소대장 시절, 부대원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살피며 밤을 새우던 밤들. 서류 한 장, 작전 하나에도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견디던 새벽들.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계급이 나를 증명해주지 않아도, 그 치열한 하루하루는 나 자신을 떳떳하게 했다.


물론,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사람인지라, 내 안에서도 때때로 바람이 이는 건 사실이다.

‘조금만 더 욕심냈더라면?’

‘조금 더 눈에 띄게 움직였다면?’

하지만 그런 생각이 스쳐갈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나답게 최선을 다했고, 어떤 순간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짜 억울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아닐까. 정작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결과만 아쉬워하는 것. 그런 후회야말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겠지. 나는 그 과정을 소중히 여겼다. 실패한 날조차도 배움이었고, 실수했던 순간도 성장의 발판이었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만들었고, 그래서 지금의 나는, 군복을 벗은 지금도 흔들림 없이 서 있다.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당신, 군생활 끝나고도 여전히 군인 같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에 품은 태극기는 쉽게 내려지지 않나 봐.”

그 말은 농담이었지만, 내 진심이기도 했다. 내가 군인이었던 시간은 내 삶을 지탱한 근육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근육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어제의 나를 미소로 떠올린다. 미련 없이 최선을 다한 시간. 그것이면 충분하다. 꿈꾸던 장군의 별은 가슴에 달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건 내가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발걸음엔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었고, 나의 선택엔 온전한 진심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말할 수 있다.

"그 길이 나에게 와줘서 고마웠다고."


한 줄 생각 : 계급은 남기지 못했지만, 후회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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