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승사자가 아닌, 진짜 교관으로

책임의 무게

by 서담

중위로 진급하자마자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격훈련 교관이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게 꼽히는 훈련이 있다면, 단연 유격훈련이다. 숲 속과 산악지형을 누비며 체력과 정신을 동시에 시험하는, 말 그대로 한 사람의 한계를 확인하는 훈련이다. 그 훈련을 지도하고, 때로는 끌어주며, 또 때로는 무섭게 몰아붙이는 존재가 바로 ‘유격 교관’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교관의 모습은 위압적이다. 팔각모에 각 잡힌 전투복, 그리고 눈빛을 가리는 검은색 선글라스. 훈련생들에게는 차갑고 무자비한 존재, 그야말로 저승사자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교관의 임무는 단순한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생의 한계를 끌어내고, 또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신과 육체를 단련시키는 것. 그 무거운 책임이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유격교관으로서 첫 임무를 맡기 전, 나는 군단 정찰대에서 1주간의 사전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았다. 단순한 교재나 시뮬레이션이 아니었다. 교관이 되려면 우선 피교육생의 고통을 알아야 했다. 훈련생의 자리에서 1주일간 직접 모든 과정을 체험해야만 진짜 교관으로서 임무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기초장애물, 산악장애물, 종합장애물 코스와 함께, 체력단련과 산악 구보를 하고, 밤에는 차가운 땅바닥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붙였다. 손에는 물집이 터졌고, 목은 이미 쉬고, 발은 전투회에 짓눌려 터져 나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정신적인 압박이었다.

“10회 반복! 몇 회?”

“30회 반복! 몇 회?”

그때마다 터져 나오는 구호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훈련생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깨우는 외침이었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훈련생 과정을 마친 뒤, 나는 비로소 교관의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교관은 단순히 명령만 외치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훈련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을 때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처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차려를 주더라도 병사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그 모든 것을 뼛속 깊이 익혀야 했다.


육성 지휘법 하나에도 훈련이 따랐다. 목소리가 갈라져도, 목구멍이 찢어져도 외쳤다. “조교! 올빼미 집합!” 휘슬 하나로 수십 명, 수백 명이 동시에 움직였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훈련생들은 교관을 두려워했지만, 사실 교관은 더 두려웠다. 수많은 목숨이 내 책임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유격장에 모인 이들은 단순한 병사들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었고, 누군가는 몸이 약했고, 누군가는 마음이 약했다. 그러나 교관의 임무는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전투 가능한 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때로는 무섭게 몰아붙였다. 산악 기동훈련에서 뒤처지는 병사를 앞에서 끌어주기도 했고, 동료의 짐을 대신 들어주며 “끝까지 가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기도 했다. 훈련생들은 교관을 욕하면서도, 마지막에 훈련을 완주했을 때 눈물 섞인 경례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진짜 교관이었다.


유격훈련은 결국 반복이었다. 똑같은 동작을 수십, 수백 번씩 반복하며 근육에 새겨 넣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훈련하는 것, 그것이 생존이었다.

“10회 반복! 몇 회?”

“30회 반복! 몇 회?”

마지막 구호는 언제나 똑같았다.

“원기왕성하게, 생략합니다!”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산을 타고 퍼졌다.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숲 속 어딘가에서 그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교관으로서의 시간은 내 군 생활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도 무거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값진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단순히 훈련생들을 단련시킨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도 단련되었다. 책임의 무게, 인간의 한계, 동료애의 힘을 그때 배웠다.


세월이 30년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귓가에는 휘슬 소리와 구호가 맴돈다. 그때의 구령, 그때의 숨소리, 그리고 교관으로서의 책임감은 내 인생의 일부로 남아 있다.


나는 저승사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훈련생들을 끝까지 버티게 만든, 진짜 교관이었다.


“군대에서 훈련은 힘들지만, 그 힘듦은 곧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그날, 나는 한 소대원을 지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