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쓸모
군대에서 전입신고는 일종의 의식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 계급, 병과, 임무와 같은 정보가 전해지고, 그에 맞는 첫인상이 결정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의식을 조금 다르게 치렀다. 신고 중 태권도 발차기를 했다.
기계화보병대대에 소대장으로 전입한 날. 대대장의 첫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황소위, 태권도할 줄 아나?”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전입 신고하다 말고, 갑자기 무술 경력을 물으시다니. 그러나 나는 곧 진지하게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했습니다. 2단입니다.”
그 순간 대대장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다음 말은 더 놀라웠다.
“좋아. 내일부터 대대 태권도 교관을 맡게. 선임하사, 교관 임명 준비하라고.”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도 파악하기 전, 나는 대대 태권도 교관이라는 추가 직책을 부여받았다. 소대장 전입 신고는 그렇게, 품세 시범으로 마무리됐다.
그 배경에는 상급부대, 기갑여단장의 특별지시가 있었다. 최근 여단 차원에서 병력의 기강 및 체력 단련 강화를 위해 “전 장병 태권도 사열”을 하달했던 것이다. 각 대대별로 준비 기간은 3개월. 사열 항목은 품세, 격파, 겨루기, 단체 태권무까지 포함된 정식 태권도 시범단 수준이었다.
내가 전입 온 것은, 그 지시가 내려온 직후. 사실상 기회를 잡은 것이라기보단, 타이밍에 걸린 것에 가까웠다. 처음엔 부담이 컸다. 600여 명에 달하는 병력. 각 중대마다 수준도 다르고, 동기부여도 제각각이었다. 소대장 업무 외에 일과 후 시간을 할애해 병사들을 가르쳐야 했고, 지휘관의 기대는 컸지만, 현실은 냉랭했다.
“태권도요? 지금 시대에 무슨…” “정비시간에 이걸 왜 해야 하나요.”
당연했다.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군에서 내 이름을 걸고 처음 부여받은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프로그램을 짰다. 1시간 분량의 사열 시범 구성.
병사들을 품세 조별로 나누고, 격파는 선임 병사들 중 실력 있는 인원을 별도 편성했다. 가장 난이도가 높고 집중이 필요한 격파 시범은 내가 맡았다.
일과 후, 체력단련시간. 연병장에 모여 일사불란하게 준비 동작을 맞추고, 태권무 음악에 맞춰 발차기, 돌려차기, 격파를 연습했다. 종종 발을 접질리는 병사도 있었고, 격파가 실패해 기운이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모두가 달라졌다. 호흡이 맞아갔고, 동작이 군기처럼 정리되기 시작했다.
결전의 날이다. 여단장님이 직접 대대 연병장을 방문했다. 대대장은 최종 사열을 앞두고 무겁게 말했다.
“황소위, 이제부터는 네 무대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마음껏 보여주자"
신호와 함께 품세가 시작됐다. 600명이 동시에 정권 지르기를 외치며 연병장을 흔들었고, 겨루기 조는 일사불란한 타격 동작을 보여주었다. 태권무는 또 다른 흥미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마지막 격파 시범을 위해 연병장 중앙 무대로 나섰다.
목표는 3단 격파. 좌측 손날 → 중간 송판, 우측 돌려차기 → 고공 격파 그리고 마지막은 180도 뒤후려차기 격파였다. 모든 게 한 치 오차 없이 끝났다. 목재는 산산조각이 났고, 내 가슴은 그보다 더 크게 터질 듯했다.
여단장은 박수를 보냈고, 대대장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날, 대대 전체는 축제의 분위기였고, 나는 장교로서 군 입대 후 첫 번째 대대장 표창장을 손에 쥐었다.
능력은 기회 앞에서 증명된다. 그 순간을 피하지 않는 자만이, 진짜 책임을 진다.
태권도는 내게 군대에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준 첫 무기였다. 나는 여전히 군복을 입었고, 도복은 없었지만 그날의 격파는 내 인생의 벽 하나를 깬 순간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오지만, 준비된 자만이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