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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부대, 깨어있는 책임

리더란

by 서담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니,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소대장이었고, 그날은 2중대 일직사관이었다. 주간을 마치고 야간에 접어든 상황, 새벽 3시. 세상이 가장 깊은 어둠에 잠겨 있을 시간. 기계화 부대의 주둔지, 광활하게 펼쳐진 장갑차와 장비들 사이 어딘가에서, 둔탁한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쿵, 퍽… 퍽…."

그건 절대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한 소리였다. 사람이 사람을 때릴 때 나는 소리. 그리고 때리는 쪽은 고참병, 맞는 쪽은 이등병이었다. 부대 전역이 잠들어 있는 시간. 나는 그 소리에 정지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매뉴얼이 아닌, 단 하나의 감정만이 맴돌았다. "이건 안 된다. 지금 이걸 넘기면, 난 다시는 병사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날 나는 2중대 일직사관이었지만, 사건은 1중대 병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순찰구역은 대대 전체였기에 상황 파악을 위해 접근했다. 문제는 더 심각했다. 구타 가해자인 고참병은 내무반에서 술을 마시고 초소 근무에 투입된 상태였고, 같은 중대의 일직사관은 행정반에서 가면을 취한 채 자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분노와 두려움 사이에 서 있었다. 분노는 병사들을 지켜야 한다는 감정에서, 두려움은 신입 장교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에서 왔다. 사건을 덮을 수도 있었다. '타 중대 일'이었고, 이미 고참병은 눈치를 채고 서둘러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을 수습하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딱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리더는 선택받은 자가 아니다. 책임을 먼저 짊어지는 자다."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대대 상황실로 긴급보고를 하고, 5분 전투대기 비상령을 내렸다. 부대 전체가 뒤집혔다. 새벽 3시에 대대 모든 병력이 긴급 기상하고, 초소 근처로 조명이 켜지고, 폭행하던 고참 병사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 시간, 나는 숨을 고를 겨를도 없었다.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초유의 사태에 사고를 일으킨 병사의 중대장, 대대장까지 다급히 부대로 도착했다. 현장조사와 병사 분리조치, 가해자의 신병 인계까지 모든 상황이 정신없이 진행됐다.


그날, 나는 자신의 위치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술을 마시고 떳떳하게 경계근무에 투입한 고참병, 가면 중인 일직사관, 사태를 모면하려는 아니 외면하고 싶었던 일부 간부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애써 말을 아낀 고개 숙인 이등병.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만이라도, 그 병사의 편에 서 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날 이후 나는 부대에서 ‘이상한 장교’로 불렸다. "조심해. 새로 전입온 신임소위한테 걸리면 죽는데.."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차라리 조용히 처리해도 될 것을." 그런 뒷말이 이어졌지만, 나는 감수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때를 계기로, 내 소대원들은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여주기식 리더'를 원하지 않았다. '지켜주는 사람'을 원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지휘는 명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이는 것이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쌀쌀한 기운이 등에 맴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새벽, 나 하나라도 잠들지 않았기에 누군가는 더 크게 일어날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걸로 충분했다. 그게 내가 장교가 된 이유였고, 내가 내리는 결정의 무게였다.


"당신의 리더십은 당신이 보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결정한다." <스티븐 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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