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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의 첫날은 실전이었다

생존

by 서담

보병이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부임한 곳은 기계화보병, 그중에서도 기갑부대였다. 그리고 내 직책은 ‘장갑차 소대장’. 병과의 경계를 넘어선 첫 명령지였다.


소대장 임무를 처음 부여받고 나는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소대원을 이끌겠다는 의지, 책임감을 다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패기까지. 그것들은 더블백을 꾸리던 손끝에도, 부임지로 향하는 열차 창밖을 바라보던 눈빛에도 배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열차에 몸을 싣고 나니, 묘한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설렘이라고 하기엔 무거웠고, 두려움이라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 ‘모르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본능적 감각이 내 안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던 것 같다.


11월. 겨울의 시작이었다.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쳤지만, 내 안의 열정은 그 한기를 무시할 만큼 뜨거웠다. 적어도, 부대 도착 전까지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부대는 휑했다. 신병으로서의 전입이 아닌, 소대장으로 부임했지만 나를 반기는 건 텅 빈 막사와 찬바람, 그리고 인사계 선임하사 한 명뿐이었다.


지프차에 올라 칠흑 같은 겨울의 어둠을 뚫고 곧바로 혹한기 훈련장으로 향했다. 전조등만이 어둠을 가르며 도로를 타고 달렸다.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대대장에게 약식으로 신고를 했고, 곧바로 소대장으로 생활하게 될 2중대 숙영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나는, 위장크림을 발라 누가 누군지도 구분되지 않는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병사들에게 “이제부터 네 소대다”라는 말을 듣고 배치되었다.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첫인사’, ‘첫 회의’, ‘소대원 파악’ 부임전 생각했던 그럴듯한 계획과 나름의 준비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계획이 아니라 상황이 나를 데려갔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동계물품이 몇 가지 있는 더블백은 부대에 놓은 채 별도 혹한기 용품을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덩그러니 야전상의만 호기롭게 착용하고 훈련장으로 온 것이다. 부대 훈련일정과 전입 스케줄이 겹치며 행정적 혼선이 있었고, 결국 나는 얇은 야전상의를 입은 채 영하 5도를 넘나드는 훈련장 한가운데에 던져졌다.


밤이 되자, 찬기운은 온몸을 파고들었다. 잠은 사치였다. 첫 부임지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군대는 기강보다 먼저 생존을 가르친다.”


나는 그날, 리더십이란 말로 포장된 이 소대장이란 직책이 얼마나 인간적인 고통과 마주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배고픔과 추위는 육체의 문제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나를 ‘소대장’으로 보는 수십 쌍의 눈은 정신적 압박으로까지 다가왔다.


위장무늬에 가려진 얼굴, 하지만 그 안에 깃든 병사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이 사람이 우리를 이끌 자격이 있는가.” 나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말보다는 ‘존재’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같이 얼었고, 같이 배고팠다. 비록 훈련을 마치고 부대복귀를 앞둔 하루였지만 그들과 함께 땅을 팠고, 눈을 퍼냈고, 장비를 정비했다. 지시하기 전에 움직였고, 불만을 말하기 전에 귀를 열었다.


리더는 먼저 행동하는 자라고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군기를 다시 붙들었다. “추위는 언젠가 끝나지만, 신뢰는 한번 잃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날 훈련복귀를 하고 정식으로 전입신고를 한 뒤 나는 비로소 직책을 부여받았다. 5 기갑여단 113 기계화보병대대 2중대 화기소대장으로.


지금 돌아보면, 그 첫날은 리더십의 교본이 아니라 리더십의 실전이었고 장교로서 실전의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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