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충성, 그 이후의 시간』 출간소식 전합니다 ☆

군복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나를 마주했다

by 서담

보통 회고록이나 자전적 에세이라는 장르는 무언가를 이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영웅담이거나, 치적이거나, 세상이 알아줄 만한 업적에 대한 기록들. 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나는 그런 식으로는 단 한 줄도 적을 수 없었다.


내게는 그럴듯한 성공담이 없었다. 오히려 많은 날들이 시행착오였고, 많은 밤들이 막막함이었다. 전역을 앞두고 군복을 벗은 어느 날, 나는 집 거울 앞에 서서 멍하니 내 모습을 바라봤다. 계급장이 없어진 자리, 위엄 대신 어색함이 남은 몸짓.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아, 나라는 사람의 외피가 사라졌구나.’


군인은 늘 누군가에게 불려야 존재가 드러나는 직업이었다. ‘소령 누구’, ‘중대장 누구’, 그 모든 호칭과 타이틀이 사라진 지금,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전역이라는 건 단순한 이직이나 직장 이동과는 결이 다르다. 20년 넘게 반복했던 일과를 멈추는 것, 피와 땀을 함께한 전우들과의 연결이 끊기는 것, ‘국가를 위한 충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스스로 내려놓는 일.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나는 이 책에서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 스토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한때 군인이었지만 이제 사회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가 어떻게 다시 길을 찾으려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군대에서의 리더십은 조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오해와 거리감이 되었고, 내 경험은 시장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력서 한 줄, 소개 한 문장조차 내 마음처럼 전달되지 않았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내게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실패했고, 넘어졌고, 한동안 멈췄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건 내가 입었던 군복에 새겨진 이름처럼, 마음 깊이 새겨져 있던 그 단어였다.


그건 국가에 대한 충성만이 아니다. 내가 지켜야 했던 원칙,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충실하려 했던 시간들이었다.


책을 쓰며 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야전에서 밤새 지도 위를 펴놓고 작전을 토론하던 날들, 부하의 실수 앞에서 어떻게 감싸야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던 밤, 그리고 어느 회의 자리에서 “군 출신이 왜 이렇게 까다롭냐”는 말을 듣고 웃어넘기지 못했던 나까지.


나는 그저 담담하게 적었다. 지나온 이야기지만 여전히 나를 움직이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겐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한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특히 지금 전역을 앞두고 있는 분들, 전역했지만 ‘여기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막막한 분들, 그리고 군인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이 그저 넋두리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길을 걷는 중이고, 이 기록은 내가 그 길 위에 남긴 좌표들이니까.


이 글은 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 가깝다. 나를 너무 몰아세웠던 날들, 스스로를 쓸모없다 여겼던 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방향을 틀어보려 했던 내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책 제목은 『충성, 그 이후의 시간』이다. ‘충성’은 끝나지 않았고, ‘이후의 시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또 다른 전우들을 이 사회에서 만나고 있다. 이 책이 그 만남의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겐 자랑일지 몰라도, 나에겐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77564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2화호국의 땀, 전장의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