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시험장
바람결이 유난히 무겁게 스쳐 가는 요즘, 우리는 한 젊은이의 결정을 통해 다시금 ‘책임’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된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아들, 이지호 군이 복수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해 입대한 사건이다. 단순히 개인의 진로 선택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고도 무겁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가 자녀의 병역 문제는 늘 예민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주제다. 면제나 특혜는 사회적 불신을 낳고, 이는 곧 기업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가운데 이지호 군의 해군 장교 임관은 “특권이 아닌 책임”을 선택한 행위로 읽힌다. 이는 곧 삼성이라는 가문의 사회적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해군 장교의 길은 단순한 군 복무가 아니다. 거센 파도와 맞서는 훈련, 부하를 이끄는 리더십, 위기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경험은 훗날 글로벌 기업의 리더가 되었을 때도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다. 경영학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못하는 현장 리더십의 훈련장이 바로 군대이자, 그중에서도 바다라는 극한의 공간이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과감히 내려놓았다. 이는 단순히 ‘여권의 색’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삼성의 후계자로서 한국에 뿌리를 두겠다”는 상징적 선언이며,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읽힌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정체성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왔음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장교로서의 복무는 단순히 ‘의무 이행’에 그치지 않는다. 병사보다 더 무겁고 넓은 책임을 자처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 선택을 통해, 재벌가 자녀에게 늘 드리워져 있던 ‘특혜’라는 그림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사회적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비롯되며, 그 무게는 스스로 감내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지호 군의 입대는 단순한 개인적 진로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소명, 사회적 기대, 가문의 상징성, 그리고 미래 리더십의 단초가 교차하는 역사적 선택이다. 그가 왜 그런 길을 택했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한국 사회와 삼성의 미래 리더로서 책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대답으로 귀결된다.
특권 대신 책임을 택한 그의 결단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신뢰의 씨앗을 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