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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달빛 아래, 군인의 또 다른 귀향

그리움과 안심

by 서담

추석 명절은 늘 풍성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귀성길에 나선 차량들이 고속도로 위를 메우고, 휴게소마다 웃음 섞인 발걸음과 기름진 음식 냄새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한 풍성한 곡식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잠시나마 넉넉해지는 시기다.


올해는 특히 7일에서 10일까지, 역대 최장의 연휴 기간이라고 한다. 고향을 다녀온 뒤에도 며칠 더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벌써부터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추석은 쉼과 만남의 시간이고, 기다림 끝의 보상이었다.


하지만 군대의 추석은 전혀 다른 빛깔을 띤다. 풍성함보다는 긴장, 들뜸보다는 경계가 감싸고도는 시기. 사회가 들썩일수록 군은 더욱 고요하게 숨을 고르며 경계를 강화한다. 적의 도발은 언제든 있을 수 있고, 특히 모두가 한눈을 팔고 있을 때야말로 방심이 싹트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군대에 몸담았던 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명절이란 단어는 달력에만 존재했지, 실제로는 허락되지 않은 풍경이었다는 것을.


나는 군 생활 동안 손에 꼽을 만큼만 고향을 다녀올 수 있었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고향집의 풍경, 어머니의 손맛, 아버지의 묵묵한 뒷모습, 그리고 아이처럼 반기던 형제들의 얼굴은 늘 머릿속에서만 그려졌다. 그러나 그리움은 그저 그리움일 뿐, 실제 발걸음은 부대 담장 너머로 뻗어나갈 수 없었다. 대부분의 장병들이 그랬다.


부대 안에서는 나름의 명절 분위기를 만들려 애썼다. 부대 자체적으로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작은 오락 행사를 열기도 했다. 군악대가 있는 부대라면 가락이 울려 퍼졌고, 취사병은 조금이라도 푸짐하게 식탁을 채우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로와 격려의 의미였지, 고향의 명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차례상 위에 놓인 송편은 달았지만, 그 달콤함이 입 안 깊숙이 스며들기도 전에 전방의 철책과 초소가 떠올랐다. 그곳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을 돌아보면, 명절에도 부대에서 상황대기했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달빛이 유난히 밝아, 눈앞에 놓인 철책이 검게 드리워져 있었다. 평소보다 고요한 영내의 풍경과 달리, 내 가슴속은 더 거칠게 뛰었다. 혹여라도 경계선 너머에서 작은 이상 징후라도 포착되면, 곧바로 상황은 긴급으로 치닫는다. 나와 함께한 전우들도 알았다. 명절이든 아니든,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명절은 군인들에게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된 임무의 시간’이었다. 혹자는 묻곤 했다. “명절인데, 그래도 좀 느슨하게 지내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는 안다. 군인의 하루하루는 모두가 평범하게 보내는 그 명절의 하루하루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경계선을 지키고 있기에, 누군가는 고향집에서 안심하고 송편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추석 연휴 기간이 다가오면 사회는 들뜬다. 그러나 군대의 하늘은 조금 더 무겁다.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장병들의 어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무게야말로 군 생활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순간들. 가족과 함께 차례상에 절을 드리지 못했던 아쉬움. 영내 오락 행사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모습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명’이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사회는 평화롭고 풍성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은 부대를 떠난 지 오래지만, 추석이 다가오면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불빛 하나 없는 초소에서, 달빛을 등지고 순찰하던 내 모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명절 인사 멘트를 들으며, 묵묵히 철책을 오가던 발걸음. 그것은 슬픔의 기억이 아니라, 사명의 기억이었다.


추석은 풍성한 달빛과도 같다. 사회의 달빛은 사람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고, 군대의 달빛은 우리의 고독을 깊게 드리웠다. 그러나 두 달빛은 결국 하나였다. 누군가의 풍성한 웃음을 위해, 누군가의 고요한 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군인의 명절은 그리움으로 채워졌지만, 그 그리움이 곧 누군가의 안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군인은 명절에도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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