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의 역할
명절이 다가오면 집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 재료를 준비하며, 친척들에게 보낼 안부 전화를 하며, 그때마다 아내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속에서는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게 느껴진다.
언젠가부터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의 말수가 줄고, 웃음도 조금 덜해졌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 단어 속에 숨은 묵직한 현실을 안다.
명절 전날, 버스를 예약할 때부터 나는 신경이 곤두선다. 굳이 이른 시간표를 피하고, 가능한 한 늦게 내려가는 이유, 그건 어머니를 덜 뵙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내가 조금이라도 덜 지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아내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간다. 앉을 새도 없이 상 차릴 재료를 정리하고,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인다. 제수씨들도 있지만, 그들은 늘 ‘보조’ 일뿐이다. 아내가 손에 모든 걸 쥐고 움직인다. 그동안 나와 살림을 나눈 세월이 30년이 넘었건만,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맏며느리’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무게의 부담을 안겨준다.
어머니는 여전히 주방 한편에서 참견을 멈추지 않는다. “그건 저렇게 하지 말고, 내가 하던 대로 해 “간이 좀 싱겁지 않니?” 그 목소리는 이제 잔소리라기보다 전통의 잔향처럼 들리지만, 아내에겐 여전히 부담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집에서는 아내의 불편한 일을 대신하려 애쓴다. 설거지,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청소 그런 일은 내 몫이다. 하지만 시골에 내려가면 아내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는다. 혹여 어머니가 “귀한 아들을 고생시킨다”라고 하실까 봐. 그래서 나는 일부러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아내의 분주한 손끝을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잠시도 앉지 못하고 움직이는 그 모습에서 나는 그저 ‘맏며느리’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한 사람’을 본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또 자랑스럽다.
차례를 마치고, 성묘까지 다녀온 뒤 고향집을 떠나오는 길. 버스 창문에 비친 아내의 얼굴은 피곤했지만, 묘하게 평온했다. 나는 그 옆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는 아내의 명절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에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라고 말한다. 식사도 내가 챙기고, 외식으로 대신하고, “명절 격려금”이라며 작은 봉투를 건넨다. 그 봉투 안에는 돈보다 더 큰 의미 ‘고마워’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가 담겨 있다.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 “이건 격려금이 아니라 보상금이네. 근데 나쁘진 않다.” 그 웃음에 묵은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가족 안에서 진짜 중재자는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머니와 아내 사이, 전통과 현실 사이 그 사이에서 나는 늘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춘다. 때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시키고, 때로는 아내의 상처를 다독이며.
명절이 완벽하게 평화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이유가 아닐까.
아내는 여전히 명절을 앞두면 살짝 긴장하지만, 이제 예전처럼 예민하게 굳어지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내가 조금이라도 아내의 편이 되어주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이란 결국 가족을 위한 시간이고, 그 가족의 중심에는 늘 보이지 않게 애쓰는 누군가가 있다. 그 고마운 존재를 알아봐 주는 한 사람, 그것만으로도 명절의 의미는 충분하다.
"명절의 진짜 주인공은 음식을 차리는 손이 아니라, 그 손의 고단함을 알아봐 주는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