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퇴근 후,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거창한 운동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자”라는 서로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었다. 그 말은 어느새 우리의 하루를 바꾸어 놓았다.
회사에서의 긴 하루가 끝나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제일 먼저 하는 인사가 있다. 다른 집에서는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묻겠지만, 우리는 늘 건강이 대화의 시작이다. 그만큼 이제 ‘건강’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출근길에도 우리는 작은 원칙을 지킨다. 버스로 10분~15분이면 갈 거리를 자전거로 30분쯤 달린다. 가끔은 중간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나머지 거리를 채우기도 한다. 이른 아침 공기를 가르며 페달을 밟고, 걷다 보면 어느덧 몸이 깨어나고, 생각이 맑아진다.
엘리베이터는 거의 타지 않는다. 계단은 돈 안 드는 헬스장이다. 대신 매일 열려 있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어서, 이제 자연스럽게 스스로 계단을 찾게 된다. 층수를 오를 때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만, 묘하게 뿌듯하다. 마치 하루를 조금 더 정직하게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퇴근길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아내와 함께 걷는 30~40분, 그 시간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시간이다.
식사 후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그날의 크고 작은 일들을 나눈다.
“오늘 고객이 이런 말을 하더라.”
“아침에 봤던 조깅하던 사람 또 뛰고 있더라.”
하찮은 얘기 같지만, 그 속에는 ‘오늘도 잘 살아냈다’는 위로가 담겨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우산을 함께 들고 천천히 걷다 보면, 도로 위 가로등 불빛이 젖은 도로에 비쳐 마치 별빛처럼 반짝인다. 그 빛 사이로 나란히 걷는 발걸음 소리가, 우리 부부의 리듬 같다.
걷는다는 건,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심장이 뛰고, 폐가 숨을 고르고, 다리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단순한 행동 안에 ‘삶의 태도’가 숨어 있다. 걷는다는 건 조금 더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내는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중요하지, 오래만 사는 건 의미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지. 우리 둘 다 건강해야 오래오래 함께 걸을 수 있지.”
그 대화는 마치 약속처럼 들린다. 언젠가 나이 들어 더디게 걷게 되더라도,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걷겠다는 약속. 요즘은 스마트워치가 하루 걸음 수를 세어준다. 그 숫자가 쌓일 때마다 작은 성취감이 든다. 25,000보, 30,000보 그 숫자 안에는 우리의 대화, 웃음, 그리고 사랑의 기록이 담겨 있다.
나는 늘 말한다.
“자기랑 걸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아내는 장난스럽게 답한다.
“그건 내가 이뻐서 그래.”
나는 웃으며 말한다.
“아니, 내가 운동이라 생각 안 해서 그래.”
그 웃음 하나로,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내려간다.
우리는 더 이상 ‘운동’을 한다기보다, 함께 걸으며 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삶의 속도를 맞추고, 서로의 호흡을 듣고, 그 길 위에서 다시금 사랑을 배운다. 걷는다는 건, 결국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다짐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간다.
한 줄 생각 : 사랑도 건강도, 비결은 단 하나 멈추지 않고 함께 걷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