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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식으로 맞이하는 가을

서로의 빛깔을 닮아가는 가는 것

by 서담


“정해놓지 말자.”

우리는 종종 그렇게 말한다. 어떤 날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어떤 날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다. 언제나 한쪽만 옳지 않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배우고 있다.


아내와 나는 닮은 듯 다르다. 나는 생각이 앞서고, 아내는 마음이 앞선다. 나는 계획을 세우길 좋아하고, 아내는 그때의 순간과 느낌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함께 있을 때면 우리는 늘 ‘균형’이라는 이름의 작은 줄 위를 걷는 듯하다. 하지만 그 줄 위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 부부가 지켜온 방법이었다.



가을의 숲길은 언제나 조용하다. 낙엽이 바람에 실려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시간의 흐름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그 길 위를 걷다 보면, 서로의 발소리가 한 박자씩 어긋나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나란히 맞춰지기도 한다. 그 단순한 리듬이 어쩐지 우리의 삶을 닮았다.


“이제는 우리도 참 많이 닮았지 않아?”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당신이 나를 닮은 건지, 내가 당신을 닮은 건지 모르겠네.”



그 말에 아내는 살짝 웃더니 나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나는 자기를 닮은 적 없어. 그냥 오랜 시간 옆에 함께 있었을 뿐이야.”


그 말이 내게는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닮아가는 게 꼭 외형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시간을 함께 통과하다 보면, 말투도, 표정도, 생각의 결도 조금씩 서로의 빛깔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숲 속의 정자에 앉아 잠시 머물러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지듯 내려앉았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비우며 살까?’


젊었을 때는 미래를 계획하느라 오늘을 놓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은 내일을 쫓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온도를 느끼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주름 더 생기겠다.”

“괜찮아. 웃어서 생긴 주름은 예쁜 거야.”



세월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 결코 슬픈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진 속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웃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의 깊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넓고, 단단하다. 그건 아마도,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걸어온 시간들이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준 덕분일 것이다.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삶은 ‘정답’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이해’를 넓혀가는 여정이라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보는 일이다. 아내와 나는 여전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다름이 우리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같은 방향만 바라본다면 풍경은 하나뿐이지만, 때로는 마주 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으며 숲길을 걸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의 따뜻함, 한 걸음마다 쌓여가는 마음의 거리. 그 모든 것이 ‘함께 살아가는 의미’다.


아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이랑 걸으면, 혼자 걸을 때보다 길이 짧아지는 것 같아.”

아내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손을 살짝 쥐어주었다. 말보다 확실한 대답이란, 이런 순간에 있는 게 아닐까.


같은 방향만 보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것만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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