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앞에서 다시 나를 배운다
어느덧 나이 오십을 훌쩍 넘었다. 세월이 빠르다는 말조차 무색해질 만큼 삶의 속도가 나를 앞질러 달려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또 한 번의 변곡점을 건너고 있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이쯤이면 삶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안정이라는 이름의 그늘에 들어앉는 법도 익숙해지겠지.” 그러나 막상 이 나이에 다다른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생동하고 변덕스럽고, 어쩌면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일이 바뀌고, 생각이 달라지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새롭게 그려지는 중이다. 마치 오래된 방 안을 환기시키듯 내 안의 공기들이 바뀌고 있다.
나이 오십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후반전이라 불리고 누군가에게는 내려놓아야 할 무언가 들이 많아지는 시간이라지만, 나는 오히려 ‘처음’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더 설렌다.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데는 젊은 시절에 없었던 묘한 설렘이 있다. 그것은 무모함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담대함이며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의 확장이다.
새로움은 언제나 낯설지만, 그 낯섦이 나를 깨우는 순간이 있다. 못 해본 일을 해볼 용기, 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을 누르고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결심. 그런 선택들이 오십 이후의 나에게 또 하나의 젊음을 부여해 준다. 나는 앞으로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움’이라는 단어를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자라는 중이며 여전히 달리는 사람이다.
오십이 넘어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삶의 기준은 거창한 성공이나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후회할 생각을 갖지 말자”는 단순한 문장이다.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 같아 뒤돌아보게 하고, 머뭇거리게 하고, 현재의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후회가 스며들 틈조차 남기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걸 시도한 것이 후회가 되지 않는다. 안 해본 일을 해본 것이 후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지 않은 것, 용기 내지 못한 것, 가능성을 스스로 좁힌 것이 그 어떤 실수보다 아픈 후회로 남는다는 걸 삶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호기심을 부여잡고 나의 가능성을 조금 더 넓혀본다. 내 안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고, 어쩌면 이전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삶을 온전히 내 편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나’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오십이 넘어서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익숙한 나 자신을 바꾸는 일은 마치 오래 굳어버린 글씨를 손으로 지워 새로 쓰려는 것처럼 쉽지 않다. 수십 년간 굳어온 말투, 습관, 태도,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까지 모두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것들이다.
그래도 나는 바꾸려 한다.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논리 정연하고 할 말 다 하는 아저씨보다 웃음 한 스푼 더 얹을 줄 알고 사람들 마음 한구석을 데우는 그런 나이 든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과 부딪히며 생긴 각진 모서리들을 조금씩 둥글게 갈아내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작지만 의미 있는 숙제다.
젊음은 몸의 에너지에서 오지만 나이 듦의 힘은 경험에서 온다. 그리고 그 경험은 변화를 끝까지 받아들이려는 사람에게 더 깊고 단단하게 쌓인다. 오십을 넘긴 지금, 나는 인생을 다시 배우는 중이고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는 중이다.
예전보다 많이 가진 것도 없지만 그 대신 더 깊게 보는 눈이 생겼다. 예전보다 큰 꿈을 꾸지는 않지만 그 대신 더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안다. 예전보다 겁이 없지는 않지만 그 대신 두려움 속에서도 전진하는 법을 배웠다. 나이 듦은 후퇴가 아니라 확장이다.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다시 시작한다
오십이라는 숫자가 어떤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을 열어젖히는 신호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온전히 이해했다. 내 남은 생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고 ‘배움을 멈추지 않을 자유’가 주어진 시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답게, 후회 없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다.
나이 오십+의 나는 여전히 변화 중이고, 여전히 배우는 중이며,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이다. 세월은 분명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다. 논리만 가득한 아저씨가 아니라 푸근함이 묻어나는, 말 한마디에도 온기가 담긴, 그런 사람이 되고자 오늘도 나를 다듬는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의 끝이 아니라 이 길을 걷는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충분히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