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내는 모든 순간
우리는 종종 삶을 등급으로 나누고,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재단하며,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거나 혹은 자신의 삶을 누군가의 삶에 견주곤 한다. 높은 곳에 선 사람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낮은 곳에 선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아래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비교와 구분의 행위가 과연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야 아주 단순한 진실 하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모든 삶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에는 우열도, 높낮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각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자,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선 위를 걷고 있다. 생의 고통도, 기쁨도, 실패도, 소소한 행운도 오로지 그 사람에게만 허락된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어떻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서로 비교할 수 있을까.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두고 “어느 언어가 더 훌륭한가”라고 묻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이미 명확하다. 삶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기록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잘 살아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과거에 이런 말들을 듣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살아보니, 삶이 반드시 화려해야 할 이유도, 훌륭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 같은 서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박동하고, 어떤 사람은 느린 호흡으로 하루를 버틴다. 어떤 이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성장하고, 어떤 이는 고독의 방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기른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각자의 내면이 들려주는 고유한 리듬일 뿐이다. 동일한 순간에 태어난 사람은 없고, 동일한 상처를 겪는 사람도 없으며, 동일한 기쁨을 같은 강도로 느끼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삶의 가치를 서로 견주는 일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등식 위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남의 삶을 기준 삼는 순간, 나의 이야기는 흐려진다
비교는 종종 속삭인다.
“너는 아직 부족하다.”
“너는 더 가져야 한다.”
“너는 저 사람보다 뒤처졌다.”
이런 목소리는 사람을 점점 왜곡시키며, 결국 자기 삶의 자리에서 자신을 밀어낸다. 비교는 타인의 조명을 내 삶에 들이미는 행위이며, 그 빛 아래에서는 나의 고유한 색이 흐려지고 빛을 잃는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내 삶을 바라보면 알게 된다. 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했으며, 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는 사실을. 타인의 삶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나는 나의 삶을 잃는다. 내가 걸어갈 길에서 시선을 빼앗기고, 내가 쌓아온 시간의 흔적들을 스스로 무가치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시 오늘의 자리로 돌아와 숨을 고르면 알게 된다. 비교는 선택 가능하지만, 존재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누구의 것과도 교환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가치’라는 이름으로 삶을 평가한다. 얼마나 벌었는가, 얼마나 배웠는가, 얼마나 성취했는가.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말로 나의 존재를 설명하는가? 어떤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하루가 있다. 그런 날은 기록할 일도 없고, 말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우리는 깨닫는다. 그 평범한 하루가 오히려 우리를 지탱해 준 시간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하루가 삶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 없는 평온한 하루가 인생의 중심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값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은 이미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치 있고, 그 가치는 어떤 척도로도 측정할 수 없다.
한 사람의 하루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영혼 전체를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그렇기에 타인의 삶에 값어치를 매기려는 모든 시도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며 동시에 무례한 일이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자기 자리에서 시작된다. 내가 겪는 기쁨, 내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 내가 마주한 어둠과 빛, 이 모든 것은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문장들이다. 그러니 내 삶이 남보다 화려하지 않다고 해서 그 이야기의 의미가 줄어드는가? 누군가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서사의 깊이가 옅어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삶은 내가 살아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고유하고 완전하다.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고, 내가 겪어야 할 감정을 대신 느껴줄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이 삶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는 누구의 삶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누구의 삶도 나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나를 살며,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문장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갈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는 행위이다. 그 글이 화려하든, 조용하든, 소박하든, 굽이치든 모든 서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삶은 누군가의 평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내는 모든 순간은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빛이 되어 닿을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이 세상에 크게 울리지 않아도, 내 삶의 깊은 방에는 분명히 울림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삶은 비교될 수 없으며,
비교될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이고,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이미 귀하고, 의미 있고, 어떤 이야기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