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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숨결이 나를 깨운다

지금의 온도

by 서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사람들은 종종 뒤를 돌아본다. 누군가는 지나간 시절을 아쉬워하고, 누군가는 청춘의 빛을 잃어버렸다고 탄식한다. 세월이 주름을 남기면 그 주름 사이로 예전의 날들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도 많다. 그때가 좋았고, 그때가 전성기였다고, 그때의 자신이 지금보다 더 빛났다고 말하며 추억이라는 방에서 오래 머무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마음을 두는 것은 현재라는 생의 창문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일이란 걸. 나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후회하며 되짚어보는 일도 없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설령 그때의 선택이 부족하거나 미숙했을지라도 그 선택은 그때의 나를 살아가게 했던 유일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나를 책망할 이유가 없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때의 사정이 있었고, 그때의 용기와 한계가 존재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한들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니,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나는 단언할 수 없다. 아마 그때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또 다른 미숙함을 안고 헤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지 않는다. 되돌아가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자신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시간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고맙기만 하다.


살아보니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 후회 없이 산다는 것, 보람 있게 산다는 것, 이 모든 문장은 결국 지금이라는 순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이미 흘러갔다. 우리가 온전히 만지고 숨을 들이마시며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은 ‘오늘’뿐이다.


오늘의 마음으로 살아내는 한 시간, 그 한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된다. 그리고 그 한 달이 쌓여 우리는 한 해를 산다. 인생도 그렇게 흐른다. 그러니 오늘의 한 시간이 사실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놓치는 것은 곧 소중한 것이 된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과거를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은 기억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아팠던 날도 후회했던 날도 기쁘고 가슴 벅찼던 순간도 지우지 못하고 끌어안고 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기억들이 나를 묶어두려는 사슬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 위에 잠시 떠 있는 나뭇잎 같은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과거는 나를 가르쳐준 스승일 뿐, 내가 갇혀 있어야 할 감옥이 아니다. 내 삶의 길은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새롭게 그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미래를 두려워한다. 무엇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까 봐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결국 현재를 충분히 살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았다. 오늘 하루를 채우지 못하면 미래는 막연해지고 과거는 미화된다. 두려움과 추억이 서로 붙잡고 현재의 공간을 빼앗아간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시간을 성실하게, 그리고 기꺼이 살아낸다면 미래는 더 이상 낯선 그림자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공간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오늘의 순간들을 향해 쏟아부을 때 미래는 자연스럽게 다정해진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목표를 생각하다 스스로 지쳐버린다. 하지만 삶을 바꾸는 힘은 결코 거대한 계획에서 오지 않는다. 평범한 하루의 마음가짐에서 자란다. 오늘의 한 시간, 그 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어떻게 채웠는지, 어떤 마음으로 흘려보냈는지가 결국 내일의 나를 만든다. 나는 확신한다. 후회 없는 삶은 ‘지금’을 얼마나 충실히 살았는지에 달려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과거는 더 이상 후회가 아니라 추억이 되고, 미래는 불안이 아니라 희망이 된다.


오늘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만이 어제를 흘려보낼 수 있고 내일을 맞을 수 있다. 나는 이제 이런 질서를 이해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시간, 지금 내게 주어진 마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이것이 나의 삶을 구성하는 전부다. 오늘 살아가는 이 시간이 내일의 평온을 만들고 내년의 나를 단단하게 할 것이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현명함은 멀리 있지 않고 지혜는 특별한 날에 오지 않으며 후회 없는 삶은 대단한 선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짧지만 완전한 순간을 성실히 살아내는 데서 온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금의 나를 믿고, 오늘의 시간을 아끼며, 지금이라는 순간을 살아낸다.


지금 이 순간이 나를 살리고,
나를 지키고,
나를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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