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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달이 남아 있다는 위로

12월의 첫날

by 서담

12월의 첫날은 늘 묘한 침묵을 가지고 찾아온다. 달력의 마지막 장이 펼쳐지는 순간, 우리는 어김없이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날들은 눈부셨고, 어떤 날들은 유난히 무거웠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사이로 지우고 싶은 장면도 스며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12월 1일을 맞으면 흔히 말한다.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앞에서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르고, 못 이룬 것들만 떠올라 마음이 조금 쌀쌀해진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구나.’

이 단어 하나가 마음을 다르게 만든다. 바깥 겨울바람은 차갑지만, 내 안의 온기는 되려 조금 더 단단해진다.


한 달은 짧아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하루 30분씩 몰입한다면 책 한 권이 완성되고, 운동은 몸의 기억이 되고, 글쓰기는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다. 새로운 행동이 뇌에 “습관의 신경회로”로 자리 잡기까지 평균 21일에서 66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한 달이라는 시간은 결코 가볍지도, 마냥 부족하지도 않다. 오히려 어떤 시작에는 충분하고, 어떤 결심에는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후회하기엔 너무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한 달이면 마음은 새롭게 ‘갱신’될 수 있고, 삶의 방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과소평가하지만 시간은 늘 우리를 과대평가하고 기다려주고 있다.


사람들은 새해의 첫날에만 시작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은 시작의 자리는 마음속에서 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1월 1일에 다이어리를 새로 사고, 누군가는 생일에 맞춰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어떤 이는 12월의 첫날을 ‘온전한 시작의 달’로 삼는다. 12월은 역설의 달이기도 하다. 끝과 시작이 한 곳에서 만나 고요한 숨을 쉬는 달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잎을 떨구고 겨울바람은 모든 소리의 끝자락을 깎아낸다. 하지만 그 적막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자신을 마주한다. 무엇이 소중했고, 무엇을 흘려보냈고,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차갑게 정리되는 시간. 12월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어떤 위대한 일도 처음부터 위대했던 적은 없었다. 작가의 책은 첫 문장 하나에서 시작되었고, 마라톤 완주는 단 10분의 조깅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변화든 그 시작은 늘 작고 사소했다. 그러니 12월의 한 달을 너무 거창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하루 한 페이지의 독서, 짧은 일기 한 줄, 가벼운 운동 20분, 습관을 만들기 위한 작은 루틴 하나. 이 사소한 행동들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 날 문득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구나”

하는 생의 감각이 찾아온다. 우리는 거대한 목표보다 작은 지속력에 의해 변화하는 존재다.


사람은 연말이 되면 본능처럼 후회를 떠올린다.

“왜 더 열심히 살지 못했을까.”

“왜 그때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미뤄두기만 했을까.”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과거에서 출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는 아무런 힘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무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진 남은 시간의 여백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내년의 나’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음먹는 일 하나, 작은 변화 하나, 길지 않은 다짐 하나가 내년의 나에게 다다를 때 얼마나 큰 차이가 될지 모른다. 우리가 변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용기의 방향이다.


12월은 시간이 부족한 달이 아니라 시간이 선물처럼 남아 있는 달이다. 이미 지나간 날들보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날들이 더 가능성으로 가득한 달이다. 우리는 흔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에만 마음을 둔다. 그러나 12월은 마무리의 달이 아니라 '다시 쓰는 달’이다. 희미했던 의지를 되찾고, 작은 습관 하나를 새롭게 만들고, 오랫동안 미뤘던 말 한마디를 건네는 달.


남은 한 달은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움이 들어설 수 있는 적당한 여백이자 여지다. 올해의 마지막 달을 잘 보낸 사람만이 내년의 첫 달을 더 단단하게 맞이할 수 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무언가를 바로잡기에도, 무언가를 사랑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오늘 나의 작은 시작은 내년의 커다란 변화의 씨앗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한 달이 남아 있다.


그 한 달의 시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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