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지키는 기술과 언어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방을 옅게 물들이면 일보다 먼저 깨어나는 건 늘 스마트폰의 알람이다. 잠결에 손을 더듬어 화면을 터치하면,
어김없이 뜨는 문구 “업데이트 알림”. 별것 아닌 소프트웨어 갱신 같지만, 나는 이 사소한 문구 앞에서 늘 멈칫하게 된다.
‘그래, 이 작은 기계도 머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입는데, 나는 과연 얼마나 오래 같은 버전으로 살아왔을까.’ 기기는 업데이트를 미루면 느려지고, 오류가 생기고, 세상과의 연결이 조금씩 끊어진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삶의 시스템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우리는 익숙함의 늪에서 천천히 가라앉는다.
요즘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영화관에서도 키오스크가 사람을 대신한다. 처음에는 그 낯섦이 불편했고, 화면을 잘못 눌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괜스레 내 노화까지 들킨 듯 민망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 앞에서 우물거리던 건 기계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배우기를 잠시 멈추고 있었기 때문이구나.”
삶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때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의 활동 반경은 동시에 좁아진다. 기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변화가 우리를 피해 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늘 우리보다 앞서 달리고, 뒤처지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마음의 문이다. 변화는 늘 우리가 준비되기 전에 찾아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주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어릴 적 우리는 유연했다. 새로운 음식을 앞에 두면 주저하지 않고 한입을 베어 물었고, 새로운 놀이를 배우며 온종일 뛰어다녔다.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이 우리 몸의 기본 설정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우리는 배움보다 익숙함을 우선순위로 둔다. 새로운 방식은 ‘불편함’, 모르는 것은 ‘두려움’,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귀찮음’이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밀려난다.
그러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멈추는 순간, 세계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결제 방식이 어색해 헤매는 어르신, 버스 안에서 좌석을 넓게 펼친 신문 때문에
옆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는 중년의 아저씨, 예약 시스템을 몰라 약속 시간에 늦어 미안함만 반복하는 사람들.
이 모든 풍경 속에는 조금만 일찍, 조금만 부드럽게 삶을 업데이트했다면 단지 ‘불편’이 아니라 존중을 배웠을 사람들의 모습이 숨어 있다. 삶의 갱신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설치하듯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나는 아직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며,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는 용기이며, “변화는 적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라는 태도의 변화다. 우리가 마음을 업데이트하면 기술은 그저 덤처럼 따라온다.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과정은 우리 스스로를 믿는 일이며,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을 다시 열어젖히는 행위다. 마치 겨울나무의 마른 가지 사이로 봄의 새순이 조용히 밀고 나오는 것처럼. 삶의 업데이트는 새로움을 향한 씨앗이다.
우리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함이 아니다. 그 배움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한 도구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학교 앱을 잘 몰라 선생님이 보내는 알림조차 제때 확인하지 못한다. 어떤 어르신은 병원 예약 시스템을 몰라 진료를 받기까지 몇 시간을 왔다 갔다 한다. 어떤 직장인은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배우지 못해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배움은 단순한 기능의 확장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기술이며 타인과 연결되는 언어다. 삶의 업데이트는 결국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다.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오늘 나는 무엇을 새롭게 배웠는가?”
“어제와 다른 마음가짐 한 줄은 내 안에 생겼는가?”
배움의 속도는 예전보다 느릴 수 있다. 때로는 화면 앞에서 오래 머물고, 버튼 하나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의 업데이트는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삶은 아직도 나에게 새로운 버전으로 살아갈 기회를 준다.
나는 그 기회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깊어지고, 세상은 조금 더 환해지고, 나는 조금 더 넓어진다. 삶의 업데이트는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파동처럼 번져간다.
그것이 이 긴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나는 또 한 번 업데이트를 시작한다. 작은 변화 하나로, 말 한마디로, 배움의 자세 하나로 어제보다 조금 더 새로워지는 것.
삶은 늘 우리에게 말없이 알림을 보낸다.
“새로운 버전이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설치하시겠습니까?”
나는 오늘도 그 알림에 눌러본다.
예(Yes). 지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