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는 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쓴다. 그러나 정작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아는 능력만큼이나 타인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어떤 직장이든, 어떤 조직이든,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결이 업무의 흐름을 만들고 의사결정의 방향을 이끈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해 왔다.
“나를 아는 것만큼 타인을 읽는 능력도 중요하다”라고.
여기서 말하는 타인을 읽는다는 것은 아부나 눈치, 혹은 약삭빠른 기회주의가 아니다. 그런 행동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어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능력은, 누군가의 표정 너머에 숨겨진 의도를 이해하는 감각,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기류를 감지하는 민감성, 그리고 상대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풀고 싶어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관계적 지혜다.
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일 잘함을 곧 ‘열심히’와 ‘최선’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실함은 어떤 업종에서든 기본이자 미덕이다. 하지만 성실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업무의 본질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다. 그 문제는 문서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생각, 그들이 품고 있는 우선순위와 걱정 속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상급자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급한 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조직을 움직이고 싶은지를 빠르게 읽고, 이해하고, 정리해 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일을 ‘진짜 잘한다’는 것의 다층적 의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는 사람, 말로 하기 전 이미 흐름을 읽어내는 사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음 단계를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감각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책은 읽는 순간 나에게 모든 정보를 준다. 그러나 사람은 긴 시간을 건너야만 비로소 단어 몇 개가 보이고, 더 많은 계절을 지나야 문장이 만들어진다.
나는 오랜 시간 관찰했다. 부하들의 눈빛에서 오늘의 마음을 읽고, 동료의 말끝에서 피로의 온도를 느끼고, 상급자의 표정에서 다음 의도를 읽어내는 법을. 그들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이렇게 해달라”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하지 않은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 동료가 되고, 책임을 지는 리더십의 시작이었다.
사람의 성향은 말투에 나타나고, 사람의 부담은 어깨의 움직임에 드러나며, 사람의 고민은 가장 사소한 표정의 변화 속에 숨어 있다. 이 작은 흔적들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조직에서는 가장 안정적으로 일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새로운 업무를 맡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그 섬세한 능력을 ‘이용’하려 하는 상급자들도 있다. 그들은 나의 감각을 편리한 도구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조차도 결국 나를 흔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읽는 것은 사람의 요구가 아니라 사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질을 읽는 사람은 어디에 가도 흔들리지 않는다. 조직이 바뀌어도, 환경이 변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을 읽는 능력은 나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지혜가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조직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도 누군가가 내게 친절해서가 아니었다. 상급자든, 동료든, 후배든 그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바라보려 했던 그 사소한 노력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일은 사람이 만든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할 때 일이 제대로 흘러간다. 이 단순한 진실이 경험 속에서 가장 깊은 의미를 품고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사람을 읽으려 할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마음 때문이다. 이 능력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어떤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 주며, 세상을 두려움보다 이해로 바라보게 한다.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은, 어떤 직위나 기술보다도 오래 남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