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는 사람, 멈추는 사람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글쓰기에 재능이 필요한가요?”
예전의 나는 웃으며 “재능은 의미 없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글은 앉아 쓰면 써지고, 마음먹고 쓰면 또 쓰이며, 끝내고자 하면 끝낼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조금 지나고, 내 안의 어떤 결이 더 단단해지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글쓰기는 분명 성실의 성격을 가진다. 하루 한 줄, 아니 단어 하나도 쓰지 못한 날이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고, 문장 하나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 세상이 약간은 밝아지는 듯 느껴진다. 분명 꾸준함과 노력만으로도 일정 부분은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고 말하는 것은, 글이 가진 고유한 어려움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열심히 한다”라고 되는 일이 아니다.
‘버티는 마음’이 필요하고, '파고드는 호기심’이 필요하며, ‘놓지 않는 집요함’이 필요하고, 때로는 자신의 골짜기까지 들여다보려는 용기까지 요구한다. 자신의 감정을 미세한 단위로 해체해 내는 능력, 사소한 풍경에서 의미의 결을 읽어내는 눈, 타인의 이야기에 가닿는 감각, 들리지 않는 것들에 귀를 대는 마음… 이 모든 것이 글쓰기라는 세계를 지탱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단순히 재능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혹은 재능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능력들의 결합이라고 해야 할까?
돌아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상한 성향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고통을 견딘다. 누군가는 문장 하나 때문에 몇 시간을 맴돌며 방 안을 서성인다. 누군가는 책 한 권을 읽고도 ‘이 문장을 어떻게 내 언어로 옮길까’를 고민하다가 잠을 넘긴다. 이것이 과연 평범한 사람의 일상일까.
어쩌면 글쓰기는 재능이라기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집착’에서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렇지 않은 대화 한 구석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을 포착하고, 상처를 마주할 때 오히려 그 상처의 결을 쓰다듬으며 그 안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마음. 이런 태도들은 단정할 수 없는 성향이지만, 분명 글쓰기와 어울리는 기질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재능’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십 시간 동안 아무런 대가도 보장되지 않는 글 앞에 머무를 수 있는 힘, 작은 감정 변화에도 마음의 결이 흔들리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가끔은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가혹할 만큼 정직해지려는 태도. 이것은 재능이라기보다 광기와 열정 사이의 어떤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일상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세계를 견디는 감각이고,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데리고 다시 책상 앞으로 오는 힘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게 왜 재능이죠? 그냥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노력은 하고 싶을 때만 가능하다. 반면에 글을 쓰는 사람은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글 앞에 붙들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단순한 노력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렇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글쓰기에는 분명 ‘재능’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세계를 기꺼이 짊어지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수많은 문장들이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읽히지 않은 문장도, 이해되지 않은 문장도, 버려진 문장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장은 언젠가 또 다른 문장을 낳고, 그 문장은 다시 또 다른 생각의 통로가 된다. 글쓰기는 결국 ‘계속 쓰는 사람’과 ‘멈추는 사람’을 나누는 일이다. 딱 그 차이다. 그리고 이 단순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든다.
꾸준함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만의 언어를 만든다. 한 줄의 문장이라도 계속 쌓이면 그것은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시간이 지나 ‘글을 쓰는 사람’을 만든다. 나는 이제 확신이 든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재능은 ‘끝까지 쓰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와 자신을 연결하는 방식이며, 보이지 않는 감정을 수면 위로 떠 올리는 일이고, 말이 되지 않는 것들에 언어를 부여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자신도 몰랐던 마음이 문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건넨 문장이 그 사람의 어둠을 조금 밝히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마음, 그 세계를 계속 지켜보려는 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이 모든 것이 글쓰기의 재능이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미세하며, 때로는 스스로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결.
누가 재능이 있냐고 묻는다면 이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재능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쓰는 동안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재능은 불꽃처럼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긴 어둠 속을 걸어가며 조금씩 눈을 뜨는 과정과 같다. 매일 쓰는 사람만이 그 미세한 빛을 알아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쓰면 쓸수록 나의 세계가 확장되고 쓰면 쓸수록 또 다른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재능이 되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