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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하루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의지들

by 서담


살아가다 보면 문득 그런 순간이 있다.

“나는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질문이지만, 대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우리가 정말 살아 있고 싶다면, 하루의 시간들 속에서 작은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좋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는 일, 잠깐의 산책에서 계절의 향을 알아차리는 일, 누군가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한마디 말. 그런 아주 작은 순간들이 하루의 결을 만들고, 그 결이 모여 우리의 삶이라는 직물을 짜내는 것이다.


어제 야외에서 걸었던 시간의 흔적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옷 사이를 파고드는 찬바람이 미세한 감기 기운과 함께 오늘의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마가 살짝 뜨겁고,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다 만 기침 하나가 내 생각과 행동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몸이 보내오는 작은 신호는 때때로 우리가 너무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이런 순간에 오히려 ‘내가 살고 싶은 하루’를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조금 아프다고 해서 내가 살아내고 싶은 하루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바빠도, 나는 하루에 단 하나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넣어두려 애쓴다. 그것이 글쓰기든, 운동이든, 독서이든, 혹은 단지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이든..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워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지.”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타협하고 나면 삶에서 ‘나’라는 주체는 점점 흐릿해진다. 나는 흐릿해지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때때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남들의 시선이 등을 스칠 때도 있고,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있다. 그렇다 해도 나다움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며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다짐 같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지금은 늦었다’ 혹은 ‘더 젊었을 때 할 걸 그랬다’는 후회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 젊은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빠르고, 가장 적절하고, 가장 가능성 있는 때다.


세상의 시계는 늘 앞으로만 가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오늘의 시간을 단 한 번밖에 가지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일을 가꾸어가는 행위는 삶 전체에 대한 경의이자,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감기 기운으로 조금 흐릿한 머리, 조심스럽게 나오는 숨소리, 기침과 함께 흔들리는 가슴의 리듬. 그 모든 것마저 나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 오늘 하루를 너답게 살아라."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오늘의 나를 조금씩 더 이해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글자 하나하나가 생각을 붙잡고 문장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도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간다. 오늘 적은 글자가 내일의 나를 이끄는 이정표가 된다는 믿음, 어쩌면 그 믿음이 나를 다시 책상 앞에 앉히고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큰 변화만을 바라보지만 사실 가장 큰 변화는 이처럼 사소한 하루의 성찰에서 시작된다.


오늘 내가 쓴 한 문장, 오늘 내가 품은 한 생각, 오늘 내가 걸어낸 한 발걸음이 미래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고 명확하게 만든다. 하루의 의미는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하루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온다. 조금 아파도, 조금 지쳐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가꾸어가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라난다. 내가 살고 싶은 하루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나답고, 진실하고, 후회 없이 살아낸 하루’ 그 하루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하루를 위해 마음을 들어 올린다.

글 한 줄에,

생각 한 조각에,

나를 계속해서 살아 있게 하는 작은 생명의 불씨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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