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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Nov 24. 2022

무의식적 기표의 반복

그로 달레, 스베인 뉘후스 <앵그리 맨>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야! 용서해줘."

간혹 내가, 내가 아닌 순간이 있다. 평소의 나와는 완전 딴판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이성을 누르고 분출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주위 사람들은 당황한다. 긴장한다. 놀란다. 때에 따라서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 순간엔 '나'조차도 그 상황에 놀란다. 보통은 정신이 들면 그 모든 것을 후회하고 그걸로 상황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도 모르게 이런 일을 또 벌이고 말았어! 미안해."

사과하는 것도 잠시, 그 일은 다시 반복된다. 그가 원하지 않는데도 그 안의 무의식, 시니피앙이 반복적으로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그림책 <앵그리 맨>에서 우리는 무의식적 기표(시니피앙)의 반복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아빠가 웃으면서 퇴근한다. 예쁜 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아빠를 맞이하는 엄마와 종이와 펜을 들고 얌전히 아빠를 맞는 보이까지, 세 사람만 보면 참 단란한 가족이다. 하지만 아빠 뒤편의 벽지는 노랑 불꽃 무늬로 활활 타오른다. 금붕어 세 마리가 헤엄치는 어항은 서랍장에서도 너무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데다 바로 옆에 있는 망치 때문에 더욱 위태로워 보인다.


글은 불안을 더 많이 드러낸다. 보이는 퇴근하는 아빠의 기분을 먼저 살핀다. 아빠가 편안해서, 기분이 좋아 보여서 보이는 너무 좋다. ‘커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그 평화는 예상대로 오래가지 않는다. 아빠가 화가 나기 시작한다. 화는 아빠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엄마와 보이는 폭력을 피하지 못한다.


그로 달레, 스베인 뉘후스 <앵그리 맨>

보이의 눈에 아빠를 지배하는 ‘그것’은 아빠 마음속 깊숙하고 어두운 지하실에 꾸부정하고 축 늘어진 상태로 숨어있다가 아빠 몸속의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앵그리맨이다! 아빠의 등을 타고 갈비뼈를 타고 목을 넘어 올라온다. 아빠는 앵그리맨에 사로잡혀서 이미 아빠가 아니다. 


불타오르는 앵그리맨은 아빠를 점령하고 엄마를 잡아간다. 불길 속에서 엄마는 연약하게 부서진다. 그 속에서 보이는 한없이 작게 웅크리고 앉아 커다랗게 울리는 시계 초침 소리만 듣는다. 아이는 무기력한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현실을 이탈한다. 어느 순간 파란 언덕 너머 새하얀 개와 놀고 있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늘에 그을음과 재가 가득한 걸 보면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한바탕 앵그리맨이 훑고 간 자리엔 깨진 그릇, 흠집이 패인 벽, 부서진 문짝과 함께 불쌍한 그루터기 같이 작고 초라한 아빠만 남는다. 앵그리맨은 다시 아빠의 마음속 깊고 깊은 아래로, 멀고 먼 안쪽으로 숨었고 아빠는 언제나처럼 다시는 화내지 않겠다고 빌었다. 물론 그 말은 항상 지켜지지 않는다. 


엄마는 안쓰러운 아빠를 안아준다. 보이도 아빠를 안아준다. 하지만 엄마와 보이의 상처는 깊어만 간다. 앵그리맨은 언제고 다시 튀어나올 것이다. 집은 침묵에 싸이고 엄마는 투명한 의자처럼 변해간다. 보이는 탈출하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 낸다. 문이 열려있는데도. 보이를 가두는 건 마음의 문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보이가 간신히 문을 열고 나온다. 보이는 누군가에게 이 상황을 말하고 싶다. 아주 간절하게. 하지만 보이의 말을 가두는 것 역시 보이의 입이었다. 단어들은 머릿속에서 망치를 들고 쾅쾅거리지만 초강력 풀이 칠해진 것처럼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때 옆집 아줌마와 하얀 개를 만난다. 보이는 하얀 개와 나무들과 바람과 구름과 새들에게 용기를 얻어 임금님에게 편지를 쓴다. 보이의 간절함이 임금님에게 전해진다. 임금님이 보이의 집을 찾아오고 아빠는 임금님을 따라 궁전에서 살게 된다. 보이는 그곳에서 아빠가 치료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앵그리맨의 폭력은 무의식적 시니피앙(기표)의 반복, 트라우마의 반복이다. 엄마와 보이에게 앵그리맨의 출현은 늘 예측 불허의 불안을 안겨 주지만 그 시니피앙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빠의 아빠까지 연결되어 대물림되는 폭력으로 트라우마에 빠진 아빠. 아빠의 무의식에는 그 폭력을 촉발하는 치명적인 시니피앙이 있을 것이다. 그 시니피앙이 앵그리맨을 부르고 앵그리맨은 아빠를 정복해버린다. 


반복되는 폭력이 멈춰지려면 원인이 되는 시니피앙을 찾아야 하고 그걸 찾기 위해서 아빠는 길고 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앵그리맨을 만나야 한다. 보이는 아빠의 앵그리맨 뒤에는 또 다른 앵그리맨이 있다고 말한다. 늙고 화난 노인, 심술궂고, 곰팡이가 핀 절름발이 노인. 그 노인은 물론 아빠의 아빠, 할아버지다. 보이의 아빠가 마음속 어둠 그 너머에 있는 할아버지와 대면하는 자리, 그곳에는 작고 여린 아빠, 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인, 보이와 같은 또래의 조그만 아빠가 있다. 아빠는 그곳까지 내려가 보이의 할아버지, 아빠의 아버지와 화해해야 한다. 그래야 한없이 여린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보이의 무의식에도 아빠의 일그러진 앵그리맨이 반복되는 시니피앙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보이 또한 그 앵그리맨과 마주하면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밖으로 이끌어야 한다. 아빠가 임금님의 궁전에서 앵그리맨과 작고 여린 아빠와 절름발이 노인의 손을 잡아끌어 아빠 무릎에 앉히는 그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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