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무례하고 거만한 이과생이었던 나는 문과생을 만나면 그들이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다. 다른 한편으론 그들이 타고난 글재주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그들과는 걷는 길도 들이마시는 공기마저도 다른 종류인 것 같았다. 같은 세상을 공유만 하고 있을 뿐 서로 어떠한 겹침도 없이 살고 있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양 과목으로 '글쓰기' 수업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었다.
그랬던 내가 졸업하고 10년도 더 지나 자발적으로 국어국문학과에 발을 들이게 될 줄이야. 글을 쓰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지난 1월 <좋은 기억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어>에 실릴 원고가 완성되기 전까지 나 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다.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 글로 나타내야 하는데 어쩐지 명확히 보이지 않아 짤막한 개요만 써두고 초고 쓰기를 주저했다. 그러다 어느 새벽 조각난 글감을 열심히 모았더니 서로 부딪쳐 불씨가 되더라. 문학이라는 세계로 더 깊이 풍덩하고 빠져들어 한참을 헤엄쳐야 한다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하필이면 왜 국문과일까.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한 수단인 걸까. 의문은 계속되었지만 만류하는 가족을 등지고 밀어붙였다. 허우적대면 어떠한가 개헤엄도 헤엄이고 생존수영도 수영인걸. 일단 부딪히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지금이야' 연거푸 누군가가 나를 재촉했다. 다행스럽게도 의문은 곧 풀렸다. 국문과 수업을 들으니 적당한 장소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메밀배게에 머리를 대고 이리저리 도리도리 하다가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이 자세 그대로 앞으로를 위해서 정진할 수 있겠다.
이번엔 나만의 언어가 아닌 문학 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p.17, 좋은 기억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