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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Apr 05. 2023

#현실자각 2탄 _ 머슴의 기회

불황이 기회가 되는 역설

경기에 너무 민감한 중소기업


대기업에 다닐 때는, 경기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우리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는 안 하고 살았다.

대행사에 다닐 때에는, 한 업종이 어려워지면 

괜찮은 다른 업종을 찾아서 광고 캠페인을 만들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이곳은 대기업도 아니고 대행사도 아니다.


경기 둔화로 급격히 줄어든 수요,

반대로 급격히 많아진 공급,

게다가 불황일수록 1위 기업에만 몰려가는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소비자 마음까지 더해져,

내가 몸 담고 있는 마이너 브랜드는 

불황이라는 놈의 민 낯을 매일 수치로 느끼고 있다.


어제 하루의 매출이 집계가 되는 아침마다
날아온 텔레그램 문자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마케팅실에 있는 젊은 직원들도 어느새 전염이 되어

혹시 오늘 윗 분들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안 나왔나

귀를 쫑긋 세우고,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




백약이 무효인 불황기, 결국 태도를 보게 된다


팀장 이상 영업본부 회의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B2B 영업을 강화해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신규 가입자를 꼬이게 할 수 있는 기발한 제휴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기발한 마케팅 방안을 찾아야 한다. 등등

논의가 분분하다.

분명 손 놓고 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상 백약이 무효다. 

아니, 무효까지는 아니다. 단지, 그 효과가 매우 작을 뿐이다. 


이리저리 뛰어보지만, 매출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건 없다.

결과는 어차피 나쁘다.

그러면, 사실상 가장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남는 건 태도밖에 없는,,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태도가 실력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그것도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이야기이다.

실력이 거기서 거기일 때, 태도가 더해지면 빛을 발한다는 논리이고,

어쩌면, 한가로운 대기업의 이야기일 뿐이다.


중소기업에는 마땅한 실력이 없어도 그냥 태도로 승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불황으로 인해 예산이 부족해지고 

다들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아사리 판이 되면 실력자가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줄어든다.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면, 실력자와 아닌 자 간에 구분이 어려워지고,

마지막에는 실력이 아니라 태도로 승부하는 사람이 더 돋보이게 마련이다.


이 어려운 상황에,

예산 한 푼 없이도 불굴의 의지로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머슴의 끈질긴 패기

오너의 눈에는 그것이 더 예뻐 보이기 마련이다.


반면에, 전문가라서 해서 뽑았던 저 자는 뭔가.

분석만 잘하고 마땅한 대책은 못 내놓고, 

예산이 부족해서 못 한다는 말만 하고, 

도대체 맨땅에 헤딩할 자세가 안 보이는 구만. 하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그리고, 누군가 이 실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면,

다양한 헤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전문가를 몰아붙이게 된다.


“돈 쓰는 일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인간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생겼다고.


이렇게, 실력 대 태도의 싸움으로 가게 된다면, 이미 그 조직은 끝이다.

그리고, 그 싸움판의 한가운데에는 

대표가 관심 있어하는 모든 일에 발을 담그고 설레발을 치는 머슴이 있다.

별로 결과물이 없어도 상관없다. 일단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불황은 결국, 

태도로 승부하는 머슴들에게는 최고의 성장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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