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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Jun 01. 2023

아름다운 엔빵의 세계

"한턱은 사절합니다"

퍼지는 엔빵문화

요즘엔 회사에서나 사적인 모임에서나 

엔빵으로 비용을 내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말에 모여 등산을 같이 하는 사적인 모임에서는 기본이고,

친한 1~2년 차 선후배들이 모이면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내죠” 하는 문화가 된다.


회사에서도 

따로 보직장에게 팀 식사 비용이 넉넉하게 잡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 직원들과 같이 식사를 해도

자연스럽게 돈을 나눠낸다.

식당에서도 의례 그러려니 하고, 

여러 명이 먹은 테이블의 경우도 “따로 (계산)하시죠?” 하고 확인해서 

각자 먹은 음식 금액에 맞춰 결재해 주곤 한다.


처음에는 좀 쭈뼛거렸다.

보직장 별도 조직 운영 비용도 있고, 처리할 수 있는 예산 여지도 좀 있는 대기업에서는

웬만하면 선배가 내는 것이 국룰이었으니까.

회사 내 조직이 크다 보니 점심도 같은 사람이랑 계속 먹기보다는

돌아가면서 약속 잡아서 먹다 보니, 

선배한테 얻어먹고 후배한테는 사고, 비슷한 연배끼리는 같이 내는 식으로 

어느 정도 비용을 맞출 수가 있었다. 

혹시 예산 소진으로 법인카드를 못 내밀면 

눈물을 머금고 개인카드를 내밀더라도, 

어쨌든 선후배 간에는 선배가 내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작은 회사로 옮겨보니 

여기는 여기대로 나름의 룰이 있다.

조직이 크지 않으니, 늘 일정한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게 되는데,

선배라고, 윗사람이고 계속 낼 수가 없다.

게다가 조직에서 허용하는 운영 비용도 크지가 않다.


어지간하면 선배가 내는 분위기에 익숙해 있다가,

같이 낸다는 게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비용적인 측면뿐 아니라 

아주 바람직한 점이 있다.


일단, 식사할 때의 분위기가 아주 민주적이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밥을 얻어먹는다 하면, 

돈을 내는 사람의 관심사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자본주의 인지상정이다


메뉴를 고를 때의 권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엔빵의 세계에서는 

결국 엔 분의 일만큼의 지분만 있을 뿐, 

높은 사람이랍시고 메뉴를 선택하거나 대화를 이끌어갈 

하등의 권리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의외로 참 편하다.



한턱문화와 용비어천가의 상관관계

누군가의 “한턱”으로 만들어진 자리는 아무래도 

그 비용 지불자의 근황 중심으로 화제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내 느낌인가.

식사 자리의 금액에 맞춰
리스펙의 온도가 좀 더 올라가기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평소 내 돈 내고 먹기 어려운 한우를 투뿔 등급으로 시키고,

게다가 와인까지 곁들이는 자리라면 

인당 단가가 20만 원을 훌쩍 넘어갈 때도 있다.

이럴 때의 자리 분위기는

거의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신하들의 모임이 되고 만다.


조금 삐딱한 내가 보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법인카드 아니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이 거한 자리, 이 자리에서 노리는 바는 무엇인가.

게다가, 노골적인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저 저자세를 어떻게 눈뜨고 봐 줄 것인가.


음식도, 대화도 부담스럽다.



바람직한 지불 문화

물론 무조건 한턱 문화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예전에 인연이 있던 사람들과 일회성으로 만날 때는

아무래도 선배가 부담을 하는 것이 서로 마음 편하다.

선배는 뿌듯하고, 후배는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하면 된다. 훈훈하게.



하지만, 그럴 때 식사 수준은 선배가 정하는 범위 내에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 모임이 어느 정도 정례화되어 몇 번 더 만나게 된다면

이제 후배들도 같이 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 간에 예의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선배의 부담도 덜고, 

동시에 오가는 대화의 민주화도 되는 것이니.


건전한 사회 문화 발전 아닌가.

아름다운 엔빵의 세계가 좀 더 커졌으면 한다.

술이건 음식이건, 이제 돈은 같이 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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