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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28. 2020

자유와 혁명을 팔아먹은 프랑스, 프랑스 혁명의 진실


 프랑스 민중들은 고귀한 가치를 지켜내려 기꺼이 피를 흘렸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이루어 낸 것과 프랑스 민중들의 열망은 같지 않았다. 그리고 민중들의 저항은 철저히 제압되었다. 문화와 언어와 민심이 배제된 ‘프랑스식 단일화‘가 불러온 끔찍한 국가 폭력의 재앙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약속한 혁명 정부는 민중의 삶을 ‘국가중심으로 획일화’ 시켰다. 국가의 영광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종속됨을 정당화하였다. 혁명 정부의 이념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왔기 때문이다. 루소의 ‘일반 의지’란 ‘개인의 권리와 존재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는’ 국가의 의지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에 권리를 양도하는 개인에게만 자유가 보장되는’ 논리적 함정이 있다. 국가를 ‘최고의 선’으로 두고 개인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형태인 것이다. 자연히 국가의 개인에 대한 ‘절대 지배력이 부여’된다.
 
 여기서 ‘국가 폭력’이 탄생한다.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일반 의지, 국가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자는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적’이 되어 응징을 받는다. 프랑스 혁명이 탄생시킨 전쟁을 Dan Sanchez는 이렇게 말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군주제 전쟁의 '부분 약탈'에 '대중의 접근'을 만들어 '사람들 무리가 적의 무리를 함께 약탈하도록' 만들었다. 합법적 약탈에 '인민을 공개 초청'함으로써 폭력의 정당화를 이룬 것이다. 이는 '왕의 전쟁'이 '민족주의 전쟁'으로 대체된 것으로 진보가 아닌 야만으로의 회귀다. '왕과 성직자'가 '인민'이라는 최고 사령관으로 대체되며 '자유에 대한 망상'을 유혹하기에 훨씬 더 강력하고 위험하다. 광신적 헌신을 불러오는 똑같은 '미신'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혁명의 여신' 마리안느(Marianne)가 인권 선언을 들고 있는 모습(좌)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모습(우)
1793년 혁명 정부에 반발하여 일어난 '방데 농민봉기'(좌) 프랑스 공화국 의인화 '마리안느' 한 손에 fasces(구타, 참수 집행하는 처벌도구)를 들고 있다(우)

  

 이 ‘미신’이야말로 집단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인류를 파괴한 ‘전체주의’ 원리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군을 이끌고 로베스피에르가 혁명군을 이끌고 피의 향연을 벌인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민족의 영웅이었듯 나폴레옹 역시 ‘프랑스 인민의 왕’이었다. 혁명의 희생자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혁명이 끝난 1792년부터 22년간 폭동과 전쟁으로 200만 명의 프랑스인이 사망하였다. 재판으로만 3만 명이 처형되었으며 1794년 한 해 수감된 죄수만 40만 명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희생은 ‘혁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광기’는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천명한 ‘최초의 선언’에 명확하게 담겨있다. 프랑스혁명에서 탄생한 프랑스 정신 ‘자유, 평등, 박애’는 로베스피에르가 만든 것으로, 그의 처음 선언에는 한 가지가 추가되어 있었다. <자유, 평등, 박애 아니면 죽음> 자신들의 방식을 따르면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그러지 않을 시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언이었다. 혁명 정부는 초기에 이 구호를 쓰다가 나중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프랑스 혁명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표식이다.

"공화국의 일체성, 불가분성, 자유, 평등, 박애 아니면 죽음" 혁명 정부가 만든 '혁명력'이자 초기 공화국 문구(좌) "폭군에게 죽음" "민족 만세"(우)
프랑스 혁명 정부 헌정 이념이 된 '루소'의 사회계약설(좌)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자코뱅당 핵심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이것은 프랑스 혁명은 처음부터 ‘민중의 자유를 위한 혁명과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민족 개념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농민들에게 제3신분들은 ‘자유의 환상’을 심어주었고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민중을 배신했다. 그러나 프랑스 민중들은 처음부터 ‘왕정 타파’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했을 뿐이다. 왕과 귀족을 ‘적’이라 한 건 부르주아들이었다. ‘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적이 제거되어야만 이익을 보는’ 세력의 관점이다. 왕과 귀족이 제거되었을 때 이익을 보는 세력은 제3신분인 부르주아들뿐이었다. 실제 혁명이 끝난 후 그들은 새로운 기득권이 되었고 그들 방식으로 민중을 억압하고 통제했다.

 

 그 배경에는 혁명 후 발표된 ‘프랑스 인권 선언의 함정’이 있었다. 거기에는 민중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산권’이다. 권리 선언은 오직 ‘재산권’에 대해서만 ‘신성불가침의 지위를 부여’해 놓았다. 인권 선언 제17조다. 귀족은 특권이 없어졌으나 재산을 침해받지 않으므로 잃을 게 없었다. 공직자가 되려면 직접세를 낼 수 있는 재산이 있어야 했다. 투표는 충성서약을 한 국민방위군에게만 허용되었다. 여성 평등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확히 ‘부르주아 남성’의 권리를 천명한 것이었다.
 
 ‘출생’에 의한 특권이 ‘재산’에 의한 특권으로 대체된 것에 불과했다.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말하지만 실은 ‘유산자의 사유 재산에 관한 기본권’에 무게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Albert Mathiez는 말하였다. "프랑스 인권 선언은 부르주아 계급의 작품으로, 그들의 각인을 담고 있다. 이 선언에서 인정한 유일한 평등은 과세, 법률, 능력 기준 평등으로, 능력은 부에 좌우되고, 부는 세습과 신분과 가문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재산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고려되지 않았다"

고대 로마 복장을 한 혁명 초기 '마리안느'모습. 빨간모자는 고대로마에서 해방된 노예를 상징한다(좌) 1789년 8월 26일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우)  
프랑스 혁명에 참가한 여성들. 파리 도시빈민층이자 노동계급 '상퀼로트'. 혁명 당시 모든 동전, 볍률 표지, 봉인 문양, 축제 조각상 등으로 프랑스 전역에 뿌려진 '마리안느' 우표


 1789년 ‘봉건제 폐지 선언’ 또한 교회 재산 몰수 외에 매매관직 같은 자산가의 소유권은 보장되도록 했다. 그 배경에는 ‘혁명 주도 세력의 출신’이 있었다. 삼부회 제3신분 출신들은 13%만이 소상공인이었고, 변호사, 공증인, 판사, 검사 같은 법률가가 25%, 지방관리, 사법관리 같은 관료들이 43%였다. 1792년 국민공회 출신은 소상공인 비율이 9%로 낮아졌고, 교수, 의사, 군장교, 작가 같은 전문직이 17%로 높아졌다. 이들의 재산 형태는 귀족과 마찬가지로 토지재산 같은 ‘소유자적 부’였다. 부르주아라 불리던 제3신분들은 당시 귀족과 같은 특권을 누리고, 같은 가치를 소유하던 ‘동질적인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봉건적 구체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제3신분의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 인권 선언에 ‘재산권 불가침 명시’가 중요했던 이유다. 그것은 제3신분과 귀족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랑스 혁명은 자신들이 천명한 ‘평등’을 이루지 못했다. 권리적 평등과 형식적인 법적 평등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중요한 ‘경제적 평등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흥 지배계급은 ‘자산가들’로 채워졌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혁명 정부는 ‘용의자법’을 만들어 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고발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그것을 담당한 곳이 ‘공안위원회’였고 ‘혁명재판소’였다. 이렇듯 공포정치의 핵심 도구는 ‘법과 제도’라는 국가 권력의 집행에 있었다. 로베스피에르가 혼자 한 것이 아닌 ‘제도가 뒷받침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뜻이다. 그랬기에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혁명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에 충성해야 했다. 개인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많은 학자들은 프랑스 혁명과 루소를 함께 비판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히틀러가 루소 사상에서 나왔다" 하였고, 제이컵 텔먼 역시 루소를 "구세주의적 민주주의 원류로 전체주의 사상의 기원이 되었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는 "재앙으로 끝난 프랑스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라고 했다.


제3신분이 '사슬을 끊고'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 공화국의 상징 '마리안느'가 시민들에게 혁명 참여를 권하는 모습(선전화)
1793년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자코뱅당 지도자중 한 사람의 죽음을 미화했다(좌) 공포 정치 폭풍이 지난 후 '평화와 깨달음의 어머니'로 변신한 '마리안느(우)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쓴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은 온갖 종류의 죄악과 어리석은 짓이 뒤범벅 된 쓰레기 잡탕들의 광기" 라며 맹비난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국민의회 의원들 면모는 주식과 채권 브로커들로 평판이 매우 낮은 자들'이었고 그런 자들이 주도한 프랑스 혁명은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폭력과 파괴, 살육과 전쟁, 군사독재자를 출현시킬 것"이라 예측하였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코뱅의 폭정은 루소 숭배자였던 로베스피에르와 공화주의자들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민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재산권을 합법적으로 지키고 권력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킨 것은 ‘민중의 자유’가 아닌 ‘자신들의 이상’이었다. 그들이 만든 ‘법’과 그들이 민중을 대한 ‘태도’가 그 증거다.
 

 프랑스 혁명을 성공시키고 자유주의 개념을 탄생시킨 부르주아들은 '근대 자본가들'이었다. 그들이 말한 자유와 평등처럼 세상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내걸고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결국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인 자유와 평등으로 모두는 '자본에 종속' 되었다. 자본가들이던 제3계층이 필사적으로 혁명을 밀어붙이고,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혁명을 전파해야 했던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반면에 혁명으로 시민들이 얻은 건 징병과 종속, 죽음 그리고 자본이라는 ‘새로운 주인’이었다.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을까.

프랑스 혁명을 통해 탄생한 '자유의 왜곡된 개념'을 1790년 에드먼드 버크는 이미 예측하였었다.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의 무능력은, 자유라는 ‘모든 것을 속죄시키는 이름’을 사용해 덮어질 것이다"

 
혁명을 위해 피 흘린 민중들이 소외되어 있던 프랑스 혁명은, 진정 위대한 혁명이 될 수 있을까.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식민지를 그대로 용인한 혁명이, 진정 위대한 혁명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종이 간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프랑스식 자유의 허구


* 참고 자료 :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혁명은 이제까지 세상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 가장 경악스런 것이며, 온갖 종류의 죄악과 어리석은 짓이 뒤범벅 된 쓰레기 잡탕들의 광기" http://asq.kr/b1TIam1sWdR8X6, http://asq.kr/oqx8DAo0oRdb1, http://asq.kr/T8L6yMOeZtIpf, 프랑스 인권선언 "부르주아 소유가 반영된 것" http://bitly.kr/gUukYrnDwpb, <혁명론> 한나 아렌트 "재앙으로 끝난 프랑스 혁명"  http://asq.kr/9WljQBQxapTZH, "루소 전체주의의 창시자인가" http://bitly.kr/PZj0sCl8MEX, 루소의 모순과 역설 https://url.kr/ebYmJS, 강철구 교수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칼럼 모음 ["프랑스 혁명은 계급 투쟁인가" https://url.kr/FldfbW, "신흥 지배 계급은 자산가들" https://url.kr/M2fGgu, "봉건제 해체라는 주장은 의문" https://url.kr/Nw34d9,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https://url.kr/ID73PJ, "경제적 평등 실현되지 않았다" https://url.kr/JcHT6j, "프랑스 혁명 수정주의" https://url.kr/rEAgQi] <프랑스 혁명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Dan Sanchez http://asq.kr/ABK5G6M2kFF(번역 http://asq.kr/RJ7Rj22Rqy0d), Albert Mathiez 말 인용 <프랑스 혁명사> http://asq.kr/7Ht6XsybHwdH6, 루소 영문 위키피디아 http://bitly.kr/exdDaKME0H0 (번역 https://url.kr/ODvoh9), 혁명 정부 최초 구호 <자유 평등 박애 아니면 죽음> http://asq.kr/CoZwIS6IUjDXx, 프랑스 인권선언과 부르주아 http://bitly.kr/jwqZVYFKN8, 부르주아 나무위키 https://url.kr/1qiULJ, 상퀼로트 나무위키 https://url.kr/3eaMAK,  프랑스 혁명 나무위키 http://asq.kr/89tPokWx7x9y, 프랑스 혁명 연표 http://asq.kr/sBGySa49XiQr, 로베스피에르 나무위키 http://asq.kr/3XEAPYN6hOtfZ, 자코뱅 나무위키 https://url.kr/bfAay6, 마리안느 역사와 사진 https://url.kr/6RdT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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