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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Mar 08. 2021

사랑의 기원 헤드윅,
자유을 얻은 이름

온전한 나의 선택. 나 자신이 되는 것



 영화 <헤드윅> 은 당시 이십 대 한복판인 나에게 커다랗고 신선한 자극이었음과 동시에 꽤 묵직한 울림을 남겨놓았었다. 나는 OST를 한동안 매일 듣고 온갖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헤드윅을 보러 다녔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 '한 사람'이 창조해 낸 세계에 완전하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영화 <헤드윅>의 별인 감독이자 주연배우 '존 카메론 미첼'. 헤드윅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이미 나의 마음을 훔쳐갔건만, 어느 날 보게 된 그의 평범한 모습은 내게 매우 큰 감명으로 다가왔었다. 
 
그의 얼굴은 헤드윅에서의 깊고 음울한 슬픔은 찾을 수도 없이, 금방이라도 저 유년시절을 불러올 만큼 너무도 해맑게 빛나고 있었기에. 특히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투과할 듯 투명한 순수함을 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며 알았다.
 
가장 순수하기에가장 깊은 어둠을 껴안고 있으며, 그렇기에 가장 큰 빛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카톨릭 기숙학교를 다녔으며,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다 20대 초반에 커밍아웃을 했다. 

John Cameron Mitchell, 존 카메론 미첼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무수한 '검은 이야기들'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거란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수많은 지옥'을 넘나들었을 거라는 것을.


 어느 날 그는 음악이 허용되지 않는 카톨릭 기숙학교 도서관에 몰래 레코드를 가지고 들어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었고, 삶과 악마에 관한 책들을 두들겨대며 
그 안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음악이 당시 자신을 살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헤드윅의 음악들이 탄생했다. 

당연히 그의 깊고 풍부한 감성은 유년 시절로부터 왔다. 그는 군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떠돌이'로 지냈는데, 그러한 삶을 그는 이렇게 말하였었다. "옮겨 다니는 생활은 사람의 다른 반쪽을 발견하게 한다. 
나에게는 어느 것도 영원해 보이지 않았고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었다모든 것이 상대적이었다"

이것은 삶을 '여행'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선의 탄생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리 잡은 그러한 인식이야말로 그를 어디에도 가둘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길러낸 것이었으리라.
 
그의 눈빛이 '자유를 얻은 자의 빛'을 안고 있던 이유다. 


모두 같은 사람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얼굴


어디에도 얽매여있지 않은 자유로움. 거칠 것 없는 당당함. 그러나 누구도 헤치지 않는 유연함.
이미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 자'에게서만 뿜어 나오는 
공기

물론 그 모습은 그가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 정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 성 정체성이라는 매우 커다란 삶의 과제가, 아주 아프게 그의 발목을 매번 잡아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뛰어넘었다.


 본의 아니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감독 또한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다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이다. 바로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워쇼스키'(The Wachowskis) 자매가 그들이다. 원래는 형제였으나 두 형제 모두 지금은 성전환 수술을 하고 자매가 되었다. 
처음 매트릭스가 나왔을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불교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워쇼스키 자매가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매트릭스 영화 자체가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불교 강의'라는 것을.
그것은 나를 매우 감동하게 하였고 나는 그들이 그 어떤 '대 각자'보다 더 위대하게 느껴졌다.
  
더 흥미로웠던 건 성전환 수술 후 변한 그들의 눈빛이었는데, 성 정체성을 고민하며 억지로 남자로 살 때의 눈빛과 커밍아웃을 한 후 '자연의 나'로 돌아가고 난 후의 눈빛이 완전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나를 전율하게 했다. 그 지점이야 말로, 헤드윅을 연출한 미첼 감독이 말한 '자유를 얻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매트릭스 '워쇼스키 감독' before & after


 존 카메론 미첼은 커밍아웃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세상을 발견하게  것이다커밍아웃은 특히  음악에 대해 열리게 만들었고, 나 자신이 되게 했다."


그가 이렇듯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가 세상의 모든 기준과 틀을 벗어나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의 선택'으로서의 삶을 시작했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온전한 나의 선택에 의한. 온전한 나의 .
 
 경계를 넘나들었던 사람들. 그 경계에는 보통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깊이의 삶의 고통들이 포함된다. 그 지옥을 본 사람들.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다녀오고, 이제 천국을 선택하기로 한 사람들.


 <Origin of Love>는 영화 '헤드윅'의 메인송이다. 이 노래는 2500년 전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이며,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헤드윅 영화 속 'Origine of Love' 노래에 삽입된 일러스트 장면


그것은 '모든 갈라진 것들' 본래는 하나였다가 잘려나간 것들, 그리하여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헤드윅이 사랑한 소년 토미는 정확하게 '그녀의 반쪽 영혼'으로 그노시스파(영지주의)의 복음서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 경전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쌍둥이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가진 쌍둥이는 토마스다'라고 전한다. 이것은 융이 말한 '아니마. 아니무스' 개념이다. 


"헤드윅을 하면서 자유를 얻었다"라고 말한 존 카메론 미첼은 말하였다.


"헤드윅은 결국 자기 자신이, 그동안 자기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총합임을 알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조각으로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 어떤 고귀한 진리보다 아름다운 각성. 그것은 도(道)를 득한 각자의 상태, '자타불이'에 대한 통렬하고 아름다운 깨침이었다. 자유는 우리가 서 있는 저 진흙창 같은 삶 속에, 내 마음 속에 있었다. 

그것은 '온전한 나의 선택'이라는 커밍아웃으로 만날 수 있으며. 바로 그것이 
'사랑의 기원'의 다른 이름이었다. 




헤드윅 <Origin of Love> 원본 영상

영상출처 : https://url.kr/5WLqNS


< Origin of Love > 주옥같은 가사 '한글 자막'  

영상출처 : https://url.kr/K5R3kQ





필자의 영화 헤드윅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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