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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an 04. 2021

봉준호의 모티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

모든 창작의 본질, 고유성


 모든 결정적인 것들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온다.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정확한 형태로서 나타난다.
보통 우리가 지쳐 있을 때 무너져 있을 때 특히 산산이 부서져있을 때 그것은, 가장 큰 목소리로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너에게 필요한 건 지금, 이것이야" 라며.

 나의 삶이 무너져 있었을 때, 내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을 때, 그 어둠의 끝에서 튕겨져 올라 온 나에게 가장 크게 들려온 말이 있었다. 그것은 '그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그저 나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역할이나 무엇을 위한 모습과 같은 것들로부터의 자유, 모든 사회적 의무나 관습들로 고통받던 나를 벗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그렇게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장벽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자,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들과 그러했던 모든 나를 받아들이자, 부끄럽고 바보 같기만 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하나하나 어여뻐 보이기 시작했고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러한 나를 기록하는 것'이라는 글 쓰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그 자체로 소중한 의미이며,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바로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작게나마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동지 '틸다 스윈튼' 배우


 그때 나에게 가장 크게 들려온 말이 '고유성'이었다.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그것으로 파생된 모든 결과.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아름다우며, 그저 '자기표현만으로' 세상 모두는 각자가 훌륭한 예술가라는 것.

 그랬기에 당시 내게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자신의 고유한 빛깔을 잃지 않고 소중히 가꾸며 그것을 삶에 구현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가까이로는 곁에 있는 나의 아이를 비롯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어리숙한 모든 자기표현들'이었고, 밖으로는 내가 글로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었다. 그랬기에 봉감독이 칸에서 상을 받았을 때 당시 내가 쓴 글의 제목과 내용이 고유성에 관한 것이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예술 모든 창작의 근본이 되는 그것 고유성. 그리고 지난해 2월,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세상에 전해진 순간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기립 박수받게 했던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 이 멋진 말이 그 자리에서 울려 퍼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매우 시의 적절했으며'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 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


 그 말은 매우 지적인 말로 들리고 사실 지적인 작업을 하는 이에게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실은 이 말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모습, 당신의 말, 당신의 생각, 당신의 몸짓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세요. 그것이 최고의 예술입니다"

 창의적이라는 말, 예술이라는 말은 언뜻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예술적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은 이들만이 가능한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평범한 우리들로부터 예술을 박탈하였고 창조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어떤 수려한 문장들보다 내 아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일기가 더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거기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빛깔'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봉준호 감독이 그 순간 존경하는 거장을 언급하며 전하고 싶던 말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2015년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들에게 한 강연이 있다. 거기서 봉감독은 매우 중요한 말을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이 한 그 말과 같은 의미였다.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어넣은 봉준호 감독


 "자신에게 충실한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본인을 만족시키려고 애써보세요. 저는 그렇게 하려고 최면을 많이 걸었던 거 같아요. 내가 제일 첫 번째 관객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

 이 말은 남을 생각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며 말 그대로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충실할 것'에 관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감독 자신을 이끌어 온 힘이었음을 고백한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펼쳐도 그것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어떤 감동도 전해줄 수 없다. 우리들 마음을 흔들고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언제나, 오로지 나만이 전할 수 있는 목소리일 뿐이다.
그것이 오늘날 BTS가 한글로 된 노래로 세상을 감화시키는 이유이며, 영어가 아닌 한국 영화가 1인치의 장막을 뚫고 영화의 본산인 곳에 우뚝 설 수 있던 이유였다. 


 이것은 어떤 고상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나를 표현하는 것. 내 존재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지금, 하면 되는 것이다.   



* 봉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강연 영상 
https://tuney.kr/A0X9DY



필자의 <기생충> 리뷰


* 메인사진 : 보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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