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Dec 17. 2019

박하사탕,
'금기의 꿈'을 실현한 아름다움

영화 '박하사탕'이 말하고 싶었던 것


 나의 삶이 비루하고 침울했을 때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을 때 너무 외로웠을 때, 나는 스크린과 사랑에 빠졌었다. 영화는 그렇게 내게, 마치 마법에 걸린 듯 홀연히 나를 찾아왔다.


 스크린 속 이야기들과 함께라면 나는 외로움을 잊었고 그들의 깊고 넓은 삶 안에서 나의 아픔과 슬픔들을 위로받았다. 그렇게 영화의 마법은 나를 어루만졌고 나를 세상과 만나게 했으며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한 영화를 보았다. 박하사탕. 나의 이십 대를 관통하고 송두리째 흔들었던 이름. 

 극장에서 마주하던 순간, 내 안 깊은 곳에서 일던 커다란 마음의 균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한 장면 한 장면. 그 장면이 나오던 순간의 음악들까지. 
기찻길이라는 낭만과 벚꽃이 흩날리는듯한 화면 구성은 우리를 단번에 기억 저편의 추억으로 소환하였고 곧바로 이어지던 영호의 눈빛과 절규는 삶을 놓아버린 인간의 처절함을 큰 소리로 각인시키며 내 심장을 강타했다. 그것은 '첫사랑'이라 명명되는 모든 것, 우리가 가진 태초의 순수함이었고 바래지 않은 꿈이었으며 변질되지 않은 처음 마음들이었다. 

 

영원한 첫사랑, 박하사탕의 꿈 '영호와 순임이'


 무조건 봐야겠다 싶었던 그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저려오는 통증을 느끼며, 절절이 사랑에 빠져버린 나를 목격한 채로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한동안 영화가 내게 가한 강렬한 일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었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의 무엇이 그토록 나의 가슴을 깊은 바닥으로 데려간 것일까.
 
박하사탕을 극장에서만 여덟 번을 본 내게 한 친구가 말했다. 
"그게 정상이니?" 알고 있었다. 나는 그때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정상적일 수 없었다'는 것을. 그랬기에 심장을 후벼 파는 그 불편한 영화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내가 만나야 할 어떤 운명과 닿아있었다는 것을.

 
 그 순간부터 나는 스크린과 사랑에 빠졌고, 나의 외로움을 스크린에 투영하며 연애를 하듯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녔다. 머릿속이 온통 영화다 보니 영화를 배운다며 어딘가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영화하는 친구들과 인연을 맺게도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 그 뜨거움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바로, 영화 박하사탕을 만든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영화 박하사탕 장면들. 다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린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볼이 발그레해졌던 그 밤 지금 내 앞에, 들꽃을 찍고 싶다던 영호가 앉아 있었고,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웃던 순임이가 앉아 있었고, 그들을 탄생시킨 감독님이 앉아 있었다. 내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를 던졌던 그들이, 하여 나를 잠 못 들게 한 그들이 실체로서 내 앞에 있던 그 순간. 
 
나는 어쩌면 그들이 '실현해놓은 꿈' 앞에서, 나의 허망한 꿈들을 언젠가 나도, 실현해보고 싶다는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이창동 감독의 아래 말처럼.

 
"영화란 꿈과 같은 것이다. 어두워야만 볼 수 있고... 현실이 아닌 것, 불가능한 것, 불가능해서 허망할지도 모르지만 내 꿈을 재현하고 싶었다" 
 
"20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자체가 허망한 내 꿈이다. 삶의 퇴색한 의미랄까 꿈이랄까를 붙들고 있는 마흔 살이 스무 살의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가길 꿈꾸는 허망함, 그걸 꿈꿨다는 자체가 어떤 금기를 넘으려  것인지도 모른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데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되는 것처럼


금기의
 꿈이라 해도 보여주고 싶다.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 시간의 현재성을 보여주고 싶다. 그 무수한 시간의 역들을 아직 지나치지 않은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하겠지만 얘기하고 싶다. ‘박하사탕’은 시간이란 기차를 타고 가는 영화다. 이 여행에 동승한다면, 썩 즐겁고 쾌적하지만은 않겠지만 지나쳐가는 시간의 역들의 현재적 의미를 새겨볼  있길 바란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순백의 박하사탕 포스터


 박하사탕을 만든 이창동 감독의 이 말이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건, 내가 여전히 '금기의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통해 무언가를 세상에 얘기해주고 싶으며, 그렇게  우리를 스쳐간 시간들에 대해, 지금 우리 곁을 스치는 시간들에 대해, 함께 눈을 반짝이며 밤을 지새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박하사탕을 보며 그토록 가슴이 두근거렸고 저려왔던 이유며, 그 밤 그들의 눈빛이 내 가슴을 관통한 이유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말할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이 한 말 그대로.
 
"삶이란 꿈과 같은 것이다. 어두워야만 선명하게 볼 수 있고... 현실이 아닌 것, 불가능한 것, 불가능해서 허망할지도 모르지만, 내 꿈을 재현하고 싶다"
  
소금기둥이 되고 말 꿈이라도, 허망한 꿈을 꾸는 것. 그것이
 
첫사랑을 복원하는 것이고, 처음을 간직하는 것이며, 훼손되지 않은 마음을 새기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영원을 새기는 것'이라는 것을.   

 
 


영화 '박하사탕' 기찻길 부분 영상 

영상출처 : https://tuney.kr/ytRuuq


'박하사탕' OST, < 
Main Title Ⅰ>

음원출처 : https://tuney.kr/ytPO9A


* 이창동 감독의 말 인용 : 기사 참조 https://tuney.kr/ytNsWq
  


* 필자가 이창동 감독에 대해 쓴 글



이전 08화 양준일과 라붐, 꿈이 현실이 되는 마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