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Jul 31. 2020

인식의 전환은,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한다.


 만물은 ‘관성’의 영향을 받는다. 외부의 힘이 없을 때 물체는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 하며, 운동 상태가 변할 때 물체는 그에 대한 저항력을 갖는다. 또한 관성의 크기는 질량의 크기에 비례한다. 더 단단하고 무거운 것일수록 변화에 대한 저항이 크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나 인간의 사고는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번 고착된 사고는 그 방식을 고수하려 하며, 새로운 관점이 들어올 때 그것에 저항한다. 더 크게 힘을 준 생각일수록 저항감이 크다. 사회적으로 권위를 얻은 지식이나 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알려진 지식들이 불변의 진리는 아니며 만물은 늘 다양한 힘에 의해 무수하게 변한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클수록 타성에 머물던 상태는 일격을 당한다. 정돈되어 있던 질서가 새로이 재편되기에 기존의 질서는 붕괴된다. 물체든 사고든 마찬가지다. 모든 탄생은 붕괴와 재편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고란,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생각의 자유를 말한다. 생각의 관성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언제든 인식을 바꿀 수 있고 그만큼 확장된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그 관성에는 기존의 모든 '정체된 생각들'이 포함된다. 사회적 관습, 전통, 예의, 책 속의 지식, 전문가의 발언, 학계의 발표, 과학적 증명, 종교의 교리, 성자의 입, 사랑으로 포장된 모든 욕망.
 

 무언가를 사유한다는 것. 그것은 사고의 관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지식도 필요 없다. 오직 정직한 눈과 투명한 마음만이 필요하다. 


어디에도 나를 가두지 않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단단한 생각 ‘견고한 지식’일수록 참신한 생각이 깃들 수 있는 입지는 좁아진다. 내 마음이 이미 그 생각에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지식을 넘어 믿음이 되어버린 많은 것들이, 실은 얼마나 우리 삶을 유린하고 왜곡하는지 우리는 안다. 의심 없이 받아들인 수많은 지식들과 종교적 교리가 위험한 이유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여기서 출발한다. ‘프랑스를 낯설게 보는’ 것도 이와 같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모두 '참'일 수 없다는 가정하에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이 위대한 과학자나 역사학자, 종교 지도자의 말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물음표가 생기면 나는 의심한다. 그리고 탐구한다. 합리적인 사유를 하고 나만의 시선을 도출한다. 그것은 신이 한 말이라도 똑같이 적용된다. 세상의 그 어떤 지식과 교리도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그렇다. 
 
 사람이 만든 어떤 것도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편견이 들어갈 수 있다. 더구나 상아탑이라는 곳은 학파나 계파나 후원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학계’라는 곳을 나는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학파냐에 따라서 학문의 순수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상은 너무 많은 권위를 그들에게 위임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위험한 칼’이 되어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안개 속이라도 꿰뚫을 수 있으며


 얼마 전에 올렸던 ‘프랑스 음식문화’ 글에 감사하게도 셰프 작가님께서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공부하신 분이자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시는 분이셨다. 고급요리 헤게모니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된 것에 대한 의문과 프랑스 음식의 급격한 발전이 카트린의 영향이라는 설은 "유럽 학계에서는 더 이상 채택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주셨다. 전문가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해주신 고마운 댓글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유럽 학계'라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그곳에서 ‘프랑스 입김’이 얼마나 작용하느냐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트린은 최고 선진국 최고 가문 여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재종손녀였다. 그리고 카트린이 시집간 해는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한 지 60년째 되던 해였다. 권력을 공고히 다지고 프랑스와의 관계 회복이 필요했던 교황은, 카트린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탈리아의 앞선 문명을 프랑스에 전해주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실제 프랑스 르네상스가 발현 발전하고 프랑스가 유럽 패권을 쥐게 된 것도 그 직후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럽 학계의 채택’이란 이탈리아의 문명 전파를 부정하고 싶은 프랑스 학자들이, 이탈리아의 영향을 축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밀어붙인 주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일본이 떠올랐다. 찬란했던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일본이 아시아 패권을 쥐게 된 서사와 일본의 역사 왜곡 말이다. 고춧가루 유래도 마찬가지다. 같은 글의 ‘고려시대 밥상 복원사진’에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보며 몇몇 분들께서 문제 제기를 해주셨다. ‘고춧가루는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고 배추는 100년 전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잘못된 거 같다’는 것이었다.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그에 대해 과학적 반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균형을 잡고 바라보는 두 눈 속에 담긴 세상


 중국과 일본의 고문헌들에, 임진왜란 이전 고추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기록들이 수없이 나오며, 아메리카에서 건너간 피망이 한국 토종 고추가 되어 이토록 다양한 한국 고추로 변종되고, 수많은 고추 관련 전통 음식들이 생겨나고, 특히 고추장이라는 발효음식이 생겨나기까지. 이 모든 것이 겨우 400년 만에 생겨날 수 있는 문화 산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구나 정작 고추를 전해주었다는 일본에는 고추가 들어간 음식이 없다. 우리 재래 고추 품종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 47만 년 전 분화된 두 개 품종으로 밝혀졌다고도 한다. 배추도 마찬가지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향약구급방'이라는 책에 배추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고려 왕궁에서 직접 재배하였고 그 이전에 들여왔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도 배추가 재배되었고 삼국시대에 이미 김치를 먹었다는 자료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배추'는 어쩌면 '고구려에서 전래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구려 영토가 현재 만주를 포함한 중국 대륙 북부였으니 말이다. 이것은 절대로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추론이다. 더구나 우리의 모든 고문헌들은 죄다 약탈 당한채 일본 천황가나 열강들의 비밀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그것들이 고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우친 시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장되는 것들이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장을 담으려면 항아리에 담겨있던 장을 퍼내야 한다. 깨끗한 물을 받으려면 고여 있던 물을 버려야 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인식이 들어서려면 낡은 인식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그러나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꺼이 놓는 것이다. ‘많이 알고 있는 상태’일수록 비우기가 어렵다. 많이 가진 자가 잃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인식의 전환은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한다. 마음을 비웠을 때 차오르는 이치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들을 버리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관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 말이다. 
 
   




본 글과 연결되 필자의 다른 글



참고 자료 : 고추 전래설의 진실? 임진왜란 전파설 뒤집기 http://bitly.kr/X8XIK8vJ9QI, 고추는 우리나라에 수십만 년 전부터 있었다 http://bitly.kr/07zYM1OWdgA배추 전래설. 고려와 고구려의 배추 존재 자료 http://bitly.kr/yySZVrLNvGc
http://bitly.kr/n6NPcDq8jTdhttp://bitly.kr/WwjhpUcuOV1,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김치' 김치박물관 자료 http://bitly.kr/94JyIabFf1c고구려 음식문화 자료 http://bitly.kr/J6bdd7XRMYG 이탈리아 요리가 프랑스 요리에 미친 영향. 뉴욕타임즈 기사 http://bitly.kr/FnBTRhO1f5O,





이전 10화 그들은 에펠탑에 가지 않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